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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임무 수행 중인 미군의 악전고투를 날것 그대로 느끼게 하는 영화를 꼽자면,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블랙호크 다운'이 떠오른다. 1992년 대기근으로 내전 상태에 빠진 소말리아, 유엔의 구호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무장단체의 수괴인 아이디드를 제거하기 위해 투입한 두 대의 미군 블랙호크가 모가디슈 한복판에 격추된다. 헬기에 탑승한 조종사와 특수부대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하지만 무장단체와 더불어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대원들은 무차별 린치를 당하고 사살된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 진입한 레인저와 델타포스 대원들마저 고립되고, 결과적으로 미군은 열아홉 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영화의 시작은 플라톤의 "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류가 살아 있는 한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다. 전쟁의 끝은 사람이 기어이 죽어야만 끝나는 문제인 것이다. 또한 살아남은 자에겐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게 되어, 언제 어디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 말하자면 전쟁의 끝은 죽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죽은 자는 열아홉 명만이 아니다.
감독은 엔딩 크레디트의 첫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During The Raid Over 1000 Somalis Died And 19 American Soldiers Lost Their Lives. 공습 중에 1000명 이상의 소말리아인이 사망하고 19명의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전자의 죽음은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 어조로, 후자는 그와는 반대로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표현이다.
리얼한 전투 신으로 인해 게임으로 개발될 만큼 영화 '블랙호크 다운'의 액션은 압도적이다. 진짜 전투 현장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관객에게 생생히 전한다. 그리고 미군 대원들에게 감정 이입하게 한다. 악전고투 속에서도 전투에 임하는 미군의 모토, '뒤에 아무도 남기지 말고, 함께 떠나라 Leave No One Behind'처럼 전우애를 느끼게 함으로써 뭔가 웅장한 감정에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과는 반대로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하고도 단호하다.
리들리 스콧은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이 감정 이입하지 못하는 1000여 명의 소말리아인들의 죽음을 엔딩 크레디트 맨 위에 다시 소환해 재배치한다. 이로써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배후에 있고, 할리우드가 재생산하는 정의로운 전쟁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고발하고 있다. 따라서 맨 처음 플라톤의 문장과 엔딩 크레디트의 첫 문장은 서로 호응하는 고도의 장치다. 사실 영화의 이미지를 압도하는 진짜 목소리는 텍스트에 담겨 있다. 그게 이 영화의 콘텍스트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도하고 나서 전쟁에 부역한 기존의 존재론을 폐기하고 제1 철학으로 타자의 윤리학을 내세운 임마누엘 레비나스는 "전쟁은 플라톤주의의 전유"라고 일갈한다. 그는 그간의 철학이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함몰되어 이데아라는 동일자에 맞추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그 근원과 유사한 정도를 가지고 세계를 이분법으로 나눴다고 진단한다. 나와 닮지 않은 것들은 모두 배제하거나 제거의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레비나스는 모든 전쟁은 그 명분을 플라톤주의에서 찾는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플라톤주의를 전유하는 것이 실제 전쟁이라는 것이다.
내 편의 희생은 고귀한 것이고, 적의 죽음은 실제 전투에 투입되어 전사한 군인은 물론 공습 중에 희생된 민간인에게도 그저 전쟁 수행 중에 있을 수 있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반면 지난 부활절 기간, 미 국방장관은 이란에서 격추돼 실종된 미군 대원을 구출한 작전을 두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비유했다. 이를 지적한 가톨릭 교황 레오 14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통령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로 분한 합성 이미지를 SNS에 올렸다. 막말로 '내가 메시아다'라는 말인데, 그저 말문이 막힌다.
개전 초기, 미군의 오폭으로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이란의 여자 초등학생 170여 명에 대한 보도는 미군 전투기 격추와 구출 기사와 비교하면 왜 이리도 적은 지 우리 언론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건이 있던 다음 날 미국의 대통령 부인은 뜬금없이 유엔안보리 회의를 주재하면서 "미국은 전 세계 모든 어린이의 편에 서 있습니다. 하루빨리 평화가 여러분의 것이 되길 바란다"라고 연설했다. 이게 정녕 인간의 언어란 말인가.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