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기록엔 잡히지 않는 위계 압박
감찰조사 사례도 별도 관리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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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아시아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본지가 입수한 경기도 한 경찰서의 내부 공지에는 '간부 모시는 날' 관행을 끊기 위해 더치페이와 구내식당 이용 정착을 강조하고 설문조사 참여와 신고를 독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간부 모시는 날'은 일부 상급자를 위해 부하 직원들이 순번을 정해 사비로 식사를 사거나 접대하는 관행을 말한다.
경찰이 '조직문화'와 '관례'라는 이름 아래 끊어내야 할 악습을 사실상 방치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내부에서는 이른바 '간부 모시는 날' 관행을 문제 삼고 근절 필요성까지 공유했지만, 경찰청은 최근 3년간 관련 징계를 단 한 건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존재를 몰라 적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알고도 기록과 징계의 사각지대에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겉으로는 사라진 듯 보이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상급자가 직접 요구하지 않더라도 후배들이 분위기에 밀려 비용을 부담하거나 눈치를 보는 구조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일선의 설명이다. 공식 징계 기록에 잡히지 않을 뿐, 위계적 조직문화 속 묵시적 압박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시·도경찰청에서는 관련 실태조사까지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확보한 문건에 따르면 지난 3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간부(상사) 모시는 날' 관련 3차 실태조사가 실시됐다. 해당 조사는 경무기획과가 주관하고 청문감사인권담당관, 각 기능, 경찰서가 협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방식은 'e-사람' 시스템 내 설문조사였고, 시스템 접속 시 팝업 형태로 참여를 유도했다.
조사 문항도 구체적이었다. 문건은 조사 대상을 '직원들이 순번을 정해 사비로 간부의 식사를 모시는 관행'으로 규정했다. 이어 '최근 1개월 내(2월 중순 이후) 순번을 정해 간부의 식사를 모시는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경우 실제 사비 지출 여부까지 다시 확인하도록 설계됐다. 단순 인식 점검이 아니라, 관행의 존재와 비용 부담 구조를 함께 들여다본 셈이다.
본지가 파악한 경찰청의 전체 갑질 징계 건수는 2023년 33건, 2024년 29건, 2025년 31건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유형 구분 없이 전체 '갑질' 관련 징계를 포괄하고 있다. 경찰청은 감찰 단계에서도 간부 모시는 날과 관련된 피해 조사 사례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경찰청 내부비리신고센터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갑질 포함)' 신고는 2023년 60건, 2024년 80건, 2025년 82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 특유의 위계적인 조직 문화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일선 경찰관들은 문제의 핵심이 노골적 강요보다 묵시적 압박에 있다고 말한다. 서울 지역 한 경찰관은 "상급자와의 관계를 의식해 자발적인 것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구조 자체가 갑질 논란의 핵심"이라며 "노골적인 강요보다 '관례니까', '불편하게 만들지 말자'는 식의 압박이 더 많이 작동한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도 "특히 인사평가나 근무 분위기에 민감한 저연차들은 괜히 튀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불만이 있어도 말을 아끼게 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예전처럼 대놓고 '모시는 날'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줄었지만, 후배 입장에서는 여전히 눈치를 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며 "상급자가 먼저 밥을 사라고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이번엔 우리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면 사실상 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회식 문화나 조직 관례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 같은 갑질 문제는 경찰뿐 아니라 공직사회 전반에서 개선돼야 할 문제"라며 "대가성 부패 문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별도로 관리하고 엄격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