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이란전쟁, 정전협상의 기본원칙과 변수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42601000812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4. 26. 17:25

2026032501001403300077311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정전 협상기에 들어선 이란전쟁이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대치하면서 기이한 형태의 대결을 이어 가고 있다. 제1, 2차 정전협상을 앞두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미국과 이란 모두가 의전(Protocol)과 내용(Substance) 면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4월 26일 일단 무산된 제2차 정전협정의 경우에는 이란 국영 프레스(Press) 방송과 레바논 헤즈볼라 선전 방송 알마나르(AlManar, 등대)가 강경한 입장을 공언하는 중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포스트(JP) 역시 동일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서 향후 핵 문제를 비롯한 협상의제 마련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은 전략자산과 인프라 타격전에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옮겨 선박과 자금 포획으로 진화했다. 정전협상의 성공 여부는 그간 비공개리에 진행되었을 비밀협상의 막바지 진전 여하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란전쟁의 변수로 작용하는 하부구조에 속한 국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호르무즈 해협의 도서 영유권 분쟁으로 이란과 대립하고 있어 유연성이 부족하지만, 이란과 천연가스 유전을 공유하는 카타르는 기존의 균형외교 정책에 따라 정전협정의 중개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나 이들 에너지 자원 수출국에는 석유와 가스 운송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조속히 재개통될 필요성이 크다. 전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H. Nasrallah)와 아들 모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레바논 헤즈볼라는 강경파지만 이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협상에서는 종속변수가 된다. 따라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전투는 1982년 6월부터 1985년 6월간 계속된 갈릴리 평화 작전과 유사하게 리타니강을 놓고 일정 수준의 제한전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전쟁이 지구전이 되어도 정착촌의 기정사실화와 가자의 하마스 분쇄 그리고 남부 레바논과 헤르몬 산 주변의 일부 거점지역 확보와 같은 주요 현안이 국제여론의 주목에서 멀어지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정전 협상에 적극적일 필요는 없다. 미국은 국내외 여론과 나토를 위시로 하는 동맹국의 입장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의 어부지리를 고려하면 의도와 다르게 진행 중인 전쟁을 장기적으로 소모전화하기는 부담이 될 것이다.

동맹국과 국제여론의 지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중국과 러시아까지 상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공식 비공식 경로를 통해 정전협정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1980~1988년간 계속된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슬람혁명정부와의 비밀협상으로 이란혁명수비대(IRGC)에 대전차 미사일을 제공해 전쟁 국면을 이란에 유리하게 전환시킨 사례가 있다. 현재 이란과의 협상이 난항 중임에도 미국이 완전히 비관적이지 않은 이유다.

해럴드 니컬슨은 '외교론'에서 "외교정책이 비밀에 싸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외교협상은 반드시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고 했다. 협상 과정이 언론에 누설됨으로써 방해받거나 좌절되는 예는 허다하며 이러한 신뢰의 파괴는 항상 언론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제정치의 일선인 외교현장에서 현재까지 통용되는 교훈일 것이다. 모든 사안을 일반 국민이나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고 오히려 협상 성공에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유명한 모겐소(H.J. Morgenthau)는 외교협상의 네 가지 규칙을 제시했다. 첫째, 외교는 십자군 같은 정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외교정책 목표는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정의로워야 하며 적정한 힘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외교는 다른 국가의 입장에서 정치를 봐야 한다. 넷째, 국가는 자신에게 필수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기꺼이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협상의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실질적 이익을 위해 무가치한 권리를 포기할 것, 둘째, 후퇴하면 체면을 잃게 되고 심각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스스로 서지 말 것, 셋째, 약한 동맹국이 자신을 대신해 결정하게 하지 말 것, 넷째, 군대는 외교정책의 주인이 아니라 그 도구라는 점을 명심할 것, 다섯째, 정부는 여론의 지도자이지 노예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이란전쟁에 있어서 미국과 이스라엘에는 기본적 외교력이 결여 또는 무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습공격은 예상과 달리 이란의 체제 변경을 아직 이뤄내지 못했고 '핵농축' 역시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다. 유엔과 동맹국들의 지지가 결여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압도적 무력 사용과 분노의 레토릭을 넘어 군사와 외교 양 바퀴로 추동하는 평화 과정일 것이다. 비공개 물밑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미국과 이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당사국이라도 자국 국익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보편적 인도주의적 관점도 감안해서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

라빈(Y. Rabin) 전 이스라엘 총리는 1994년 노벨평화상 수상식 연설에서 국가 지도자에게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인 '삶의 신성함'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연설은 안보를 위한 군사력 강화가 오히려 안보를 위협한다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인도주의에 기반한 국제법과 인류 공동의 가치를 앞세움으로써 중동에서의 평화협상에 추동력을 제공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