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비닐봉지값 두배 뛰자… 인니 ‘8% 성장’ 꿈에 균열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427010008507

글자크기

닫기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04. 27. 14:31

이란 전쟁발 유가 충격에 플라스틱·식품값 도미노
가계소비 의존 인니, 중산층 6년새 1000만명 감소
세계銀 성장 4.7% 하향에 재무장관 "사과 기다린다" 반발
epaselect INDONESIA ECONOMY FUEL <YONHAP NO-3940> (EPA)
지난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휘발유를 넣기 위해 줄을 서 있다/EPA 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외곽의 데폭 시장. 이 곳에서 닭을 파는 닭장수 부디 씨는 매일 비닐봉지 값으로 따로 1만 5000~2만 루피아(약 1290~1720원)를 떼어낸다. 한 달 전만 해도 1만 루피아(약 860원)면 충분했던 돈이다. 1㎏당 최대 5만 루피아(약 4300원)에 닭을 파는 그에게 이 변동은 작지 않다. 부디 씨는 "값을 안 올리면 손해를 보고, 올리면 손님이 떠난다"고 말했다.

26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사소한 가격 변동처럼 보이는 이 일이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내건 '2029년 연 8% 성장' 공약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고 보도했다.

부디 씨의 사정은 시장 전반의 가격 도미노에서 나온 한 장면이다. 인도네시아 식품·음료산업협회는 지난 13일 "냉동육 포장 등에 쓰이는 플라스틱 가격이 최대 100% 뛰었다"고 발표했다. 닭·콩·식용유·비보조 연료·LPG 가격도 함께 올랐다. 자카르타 서쪽 탕에랑의 한 딤섬 판매상은 "손님 월급은 그대로인데 닭과 플라스틱값은 천정부지"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었다.

인도네시아는 약 1조 4000억 달러(약 2066조 원) 규모의 동남아 최대 경제다. 가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53.88%를 차지해, 영세 상인의 비명이 곧바로 내수 약화 신호로 읽히는 구조다. 게다가 그 소비를 떠받쳐온 중산층은 6년 사이 1000만 명 넘게 쪼그라들었다. 외부 충격에 어느 때보다 약한 시점에 이란발 유가 파장이 덮친 셈이다.

진원지는 중동이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전쟁으로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동반 상승한 영향이 인도네시아 시장 좌판까지 미친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면서 중동·유럽으로 향하는 인도네시아 일부 수출품도 운송 차질을 빚고 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 경제 구조가 이런 충격을 흡수할 만큼 두텁지 않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경제·금융개발연구소(Indef)의 리잘 타우피쿠라마 연구원은 SCMP에 "플라스틱값 급등이 길어지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결국 구매력을 짓누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가계소비가 GDP의 절반을 넘는 나라에서 영세 상인의 마진 압박은 그대로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소비를 떠받쳐온 중산층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통계청(BPS)에 따르면 중산층 인구는 2019년 5733만 명에서 지난해 4670만 명으로 줄었다. 6년 만에 1000만 명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비마 유디스티라 아디네가라 경제법연구센터(Celios) 소장은 "정부가 하위 40% 빈곤층만 보호할 뿐, 중산층을 위한 전기요금 할인이나 임금 보조 같은 안전망은 거의 없다"고 짚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외부 충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그가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에게 이어받은 '다운스트리밍'(원자재를 국내에서 가공해 부가가치를 키우는 정책)은 지난해 584조 1000억 루피아(약 50조 원)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전년 대비 43.3% 늘어난 규모다. 정부는 광물에 머물러 있던 다운스트리밍을 농수산물까지 확대하고, 석탄·니켈에 수출세를 매겨 세수를 채울 방침이다.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 재무장관은 부처별 예산을 일제히 깎아 약 100조 루피아(약 8조 6000억 원)를 확보해 연료 보조금에 투입할 계획이다. 올해 예산이 잡혀 있던 브렌트유 가격 가정(배럴당 70달러)을 국제유가가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법으로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묶어두고 있어 보조금 부담이 커질수록 다른 지출을 깎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프라보워의 핵심 공약인 8300만 명 대상 무상급식 프로그램도 지난달 31일 약 40조 루피아(약 3조 4000억 원) 규모로 축소됐다.

외부 기관과 정부의 시각은 갈린다. 세계은행은 지난 8일 인도네시아 올해 성장률 전망을 4.8%에서 4.7%로 낮췄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5%에서 4.8%로 하향했다. 둘 다 에너지 공급망 차질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아이를랑가 하르타르토 경제조정장관은 지난 13일 "5.3% 이상 성장이 가능하다"고 자신했고, 6% 성장을 목표로 내건 푸르바야 재무장관은 세계은행을 향해 "심각한 죄를 지었다. 유가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사과를 기다리겠다"며 정면으로 받아쳤다.

인도네시아 경제가 5% 성장의 천장을 뚫지 못하면 신흥국이 자주 빠지는 '중간소득 함정'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S&P 글로벌이 집계한 3월 인도네시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1로 8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경기 확장과 위축을 가르는 50선을 가까스로 지킨 셈이다. 경제개혁센터(Core)의 유숩 렌디 마닐레 연구원은 "5% 성장에 머무는 한 2045년 선진국 진입(7~8% 성장 필요)이라는 정부 비전은 실현될 수 없다"며 "공식 부문 일자리 창출과 재산업화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