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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시납북피해자들은 왜 과거사 피해 보상에서에서 제외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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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20. 17:01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제공=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북한은 6·25전쟁 중 10만여 명의 민간인들을 강제로, 계획적으로 납치해갔다. 전시납북자인 이들은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충성하던 사회지도층 엘리트들로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사라져 76년이 지나도록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

전시납북자문제는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불가항력적 인명피해가 아니라 명백하게 사회지도층 인사를 겨냥한 계획 납치 범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휴전 협정 당시는 물론 그 이후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책임규명과 원상 회복 조치에 소극적이었고, 북한은 이에 대해 발뺌하고 부인하며 지속적으로 어선 납치를 비롯해 재일교포 북송 등 전 세계에서 납치, 감금 등 더욱 대담한 범죄를 자행했다.

모든 인류가 누려야 할 신성한 권리, '가족'이 함께 할 권리는 물론, 삶의 터전과 명예마저 빼앗긴 채 오랜 세월 동안 숨죽이며 살아온 전시납북피해자의 가족들은 국가의 위로나 보호는커녕, 오히려 사회적 편견과 냉대를 견디면서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분의 생사확인도 송환도 보지 못한 채 벌써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고, 어린 자녀들마저 노년이 되었다.

2001년 이후 여러 차례 국회 회기를 거쳐 발의된 전시납북피해자 보상·지원법은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정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난 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에 전시납북피해자 보상·지원법 제정에 관한 의견 표명을 상임위원 전원일치로 의결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 가족들은 국가가 자국민 보호라는 본연의 책무를 회피하고 외면하는 현실에 분노와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 광주 5.18이나 제주4·3 사건 등 다른 과거사 희생자들에 대해 이미 이루어진 진상 규명과 보상·지원이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 전시납북피해자들에게는 왜 아직까지 적용되지 않고 있는가. 이 같은 현실 앞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9.28 서울 수복 후 납북피해가족들이 남편, 자식, 형제들을 찾으러 평양 감옥에 당도했을 때, 이미 텅 비어 있던 그 감옥 내벽에는 "우리는 조국의 강산을 뒤로 두고 홍염만장(紅焰萬丈) 철의 장막 속 죽음의 지옥으로 끌려 가노라. 조국이여, UN이여 지옥으로 가는 우리를 구출하여 준다는 것은 우리의 신념이라!"는 싯구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조국도, UN도, 76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응답이 없다. 정부는 이 같은 긴 시간동안 구출은커녕 납북 문제를 의제로 올려놓지도 못하고, 피해자들에게는 단 1원의 보상지원책도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더 이상 말만이 아닌 실질적인 자국민 보호 책무를 다해주기를 원한다.

이제는 전시납북문제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6·25전쟁납북 범죄는 그동안 자행된 북한 소행의 모든 강제 실종 범죄의 뿌리이며, 이것을 이산가족의 문제나 전쟁 시 불가피한 피해로 희석하려는 모든 시도는 북한의 반인륜범죄에 대한 공모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13일 볼커 튀르크 유엔인권최고대표와 면담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가장 시급한 북한 인권 현안 중 하나가 이산가족 상봉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의해 납치당해 76년이나 생사를 모르는 전시납북피해자들, 북한에 억류 당해 하루하루 고통 속에 신음하는 피해자들과 국군포로들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가족을 납치한 범죄 집단을 '국가'로 인정하고, 어떤 도발을 당해도 '묻지마 평화'를 추진하는 일이 자국민 보호를 최고의 책무로 삼고 있는 정부의 역할이라 할 수 있을까? 정부가 '내고향여자축구단' 응원에 3억 원을 들여 지원하는 행태를 보고 납북피해가족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우리는 지난 76년 동안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왔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다. 전시납북자 2세인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지금이라도 국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해주기를 정부와 국회에 호소한다. 먼저 추석 명절만이라도 북녘에 있는 아버지와 형제들의 묘소를 찾아 성묘할 수 있도록, 그리고 유해 발굴 사업을 통해 유해라도 고향으로 모셔 올 수 있도록 정부가 조치를 취해줘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생 아버지와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시간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비록 늦었더라도 자국민보호책무이행이라는 명분의 보상과 지원을 통해 위로를 받고자 하는 당연한 마음을 헤아려주기 바란다.

우리는 6·25전쟁때 납북되신 분들을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구출해드릴 수 없었는지 자손들로서 죄스러움에 자괴감을 느낄뿐이다. 우리 가족들은 마지막 한 분이 돌아오시는 그날까지, 아버지와 형제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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