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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행은 등장 초기 분명한 혁신을 가져왔다. 카카오뱅크는 공인인증서 없는 계좌 개설과 무료 해외송금으로 금융 소비자 경험을 완전히 바꾸었으며, 시중은행들의 디지털 전환을 자극했다. 그러나 출범의 전제였던 '메기 효과'는 반쪽짜리에 그치고 있다. 인터넷은행들은 은산분리 완화라는 특혜를 받는 조건으로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 의무를 졌지만, 수년째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결국 안전한 고신용자 위주의 대출 영업으로 회귀한 것이다.
물론 이들의 근본적 한계는 규제 환경에도 있다. 현행 은행법상 지분 보유 제한으로 인해 비금융 서비스와 연계한 생태계 확장에 구조적 제약을 받는다. 미국 소파이(SoFi)가 2022년 국법은행 인가(bank charter) 취득 이후 대출, 투자, 보험, 기술 플랫폼을 아우르는 원스톱 금융 생태계로 진화하며 비(非)이자이익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 인터넷은행도 플랫폼 수익 모델로의 전환을 모색 중이다. 카카오뱅크의 2025년 비이자이익이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1조886억원)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국내 은행권 전반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여전히 전체 영업이익의 15~2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 평균(30~4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로, 수익 구조의 근본적 혁신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전통 은행권이 역대급 성과를 거두는 구조적 배경은 경쟁이 아닌 과점이다. 5대 시중은행이 전체 예금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구조 속에서, 예대금리차를 활용한 이자이익 편중이 해마다 반복된다. 2025년에도 4대 금융지주의 이자이익 합계는 42조 9618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 막대한 이익이 쓰이는 방식이다. 은행들은 수익성 효율화만을 앞세워 전국 점포 수를 2012년 정점(7836개) 대비 5690개로 줄였고, 2025년 1분기에만 140개 지점을 추가로 폐쇄했다. ATM 역시 최근 5년간 7727대(20.6%)가 사라졌다. 그 공백이 가장 깊이 파고드는 곳은 초고령 농어촌이다. 실제로 점포 이용을 위한 이동 거리가 20㎞를 넘는 상위 30개 지역 중 26개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화 지역이다. 가까운 창구를 찾기 어려운 농어촌 노인의 현실은 우연이 아니라, 과점 구조와 수익 극대화 전략이 맞물려 만들어낸 필연적 귀결인 셈이다.
한편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 빅테크의 금융 진출은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 이들에게도 은행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동일기능 동일규제' 주장이 거세다. 그러나 이를 평면적으로 적용하기에는 기능적 차이가 엄연하다. 빅테크 플랫폼은 직접 예금을 수취하지 않으므로 뱅크런이나 시스템 붕괴 같은 전통적 금융 리스크를 직접 초래하지는 않는다. 기계적인 규제 부과는 혁신을 저해하고 진입 장벽만 높일 뿐이다. 다만 빅테크가 대출 중개, 보험 비교, 펀드 판매로 영역을 넓히면서 정보 비대칭과 소비자 피해 가능성이 커졌고, 수천만 명의 데이터 독점에 따른 쏠림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일괄적인 규제보다는 기능 범위에 비례한 단계적 규제가 훨씬 정교한 처방이다.
금융을 순수한 시장 논리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은행은 국민의 예금을 위탁받아 신용을 창출하는 기관이며, 정보 비대칭이 심한 시장이다. 개별 은행의 부실이 결제 시스템 전체의 마비와 실물경제의 연쇄 붕괴로 이어지는 시스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를 증명했다. 이미 예금보험제도와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이라는 공적 안전망이 은행을 지탱하고 있다. 공적 보호라는 혜택을 누리는 기관이 공공성이라는 의무를 거부할 수는 없다. 경쟁 촉진과 소비자 보호라는 시장 원칙을 관철하되, 금융 안정과 취약계층 접근성이라는 공공재적 기능은 규제로 보완해야 한다. 이것이 시장과 규제의 올바른 역할 분담이다.
결국 한국 금융에 필요한 것은 '시장이냐 규제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인터넷은행에는 특혜에 상응하는 공적 의무를, 전통 은행에는 과점 탈피와 금융 소외 방지를, 빅테크에는 기능 확장에 비례한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혁신과 공공성은 상충이 아닌 보완 관계다. 그 황금비율을 설계하는 것이 지금 금융당국과 금융산업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설윤 교수는…
미국 미주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경북대 경영학부에서 재직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금융 및 거시경제학이며, 현재 시장경제학회장, 한국경제학회 영남지회장, 한국경영인학회 부회장, 자유기업원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Currency Bias of Sovereign Wealth Fund Investment(2022), New Evidence on Excess Sensitivity of Household Consumption(2014), Bank Concentration and Financial Constraints on Firm-Level Investment in Europe(2008) 등이 있다.
설윤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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