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본질은 돈과 무기, 즉 방산(防産)...캐, 美 F-35 도입 재검토 이후 갈등 격화
방위비 GDP 대비 5%’라는 가혹한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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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 최고의 정책 브레인으로 잘 알려진 엘브리지 콜비 정책담당 차관은 18일(이하 현지시간) 자신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캐나다는 국방 공약 이행에서 신뢰할 만한 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미국·캐나다 '영구합동방위위원회(PJBD)' 활동의 잠정 중단을 직접 선언했다.
영구합동방위위원회(PJBD)는 1940년 8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캐나다의 매켄지 킹 총리가 전시 공동 방위를 위해 설립한 초당적 자문 기구다. 냉전기 북미 대륙의 방위 가이드라인을 설계한 북미 안보의 모태와 같은 조직이다.
엘브리지 콜비 국방정책차관은 18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지난 1월 20일 스위스 다보스포럼(WEF)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중견국이 뭉쳐야 한다"는 취지로 한 연설 링크를 공유하며 해당 연설이 캐나다와의 '영구합동위원회' 참여 중단의 이유라는 점을 확살하게 부각했다.
당시 마크 카니 총리는 강대국(미·중 등) 중심의 패권 경쟁 속에서 기존의 '규칙 기반 국제 질서'가 파열(Rupture)을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단절의 시대에 한국, 캐나다, 호주 같은 중견국(Middle Powers)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카니 총리는 "중견국들은 반드시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식탁(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메뉴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대국들은 홀로 갈 여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견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패권국과 일대일로만 협상하려 한다면, 우리는 약자의 입장에서 협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Middle powers must act together because if you are not at the table, you are on the menu..... Great powers can afford to go it alone... Middle powers do not. But when we only negotiate bilaterally with a hegemon, we negotiate from weakness.)"라고 언급하고 중견국들이 뭉쳐야만 생존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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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유엔(UN)본부를 거쳐 주요국 대사를 역임한 한 외교·통상전문가는 미국의 이번 '영구합동방위위원회'(PJBD)의 활동 중지 발표에 대해 동맹의 가치를 철저히 통상적 셈법과 '비용(Transaction)' 기준으로 재단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신고립주의 외교 노선'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음을 의미하는 거대한 신호탄이라고 해석했다.
이어서 그는 "지정학적 혈맹이자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공유한 두 이웃 나라가 '안보 파국'의 문턱에 서게 된 직접적인 도화선은 △ 최고지도자 간의 감정적 다보스 포럼 설전과 △ F-35 전투기 무기 도입을 둘러싼 방산 실리 싸움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 다보스 설전이 불러온 기습 보이콧… "안보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이번 미국의 PJBD 활동중지 선언 사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성조기를 꽂고 캐나다와 베네수엘라를 미국 영토로 표시한 합성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동맹국들을 자극하자,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다보스 연설에서 이를 정면으로 저격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뒤끝은 매서웠다.
워싱턴의 안보 핵심 브레인이자 미 국방부의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엘브리지 콜비 정책담당 차관은 지난 18일, PJBD 참여 중단을 발표하면서 카니 총리의 당시 다보스 연설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링크했다.
콜비 차관은 "레토릭(수사)보다 실질적인 군사력을 우선시하는 강한 캐나다가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방위 공약에서 신뢰할 만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며, "우리는 더 이상 레토릭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외면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캐나다 총리의 반발에 대한 명백한 안보적 보복 조치임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 F-35 '재검토'에 NORAD '인질극'으로 맞불 놓은 워싱턴
갈등의 본질은 돈과 무기, 즉 방산(防産)에 있었다.
캐나다 오타와 당국은 최근 재정 압박과 자국 국방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당초 계획했던 미국 록히드마틴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 88대 도입 사업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미국산 첨단 무기를 대량 구매해 미국의 방산 생태계에 기여하라는 워싱턴의 요구에 캐나다가 '독자 노선'으로 응수하려 한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즉각 캐나다 안보의 생명줄을 쥐고 흔들었다. 피트 후크스트라 주캐나다 미국대사는 캐나다 방송(CBC)과의 인터뷰에서 "캐나다가 F-35 구매를 축소하거나 철회할 경우,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체계에도 중대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1958년 옛 소련의 핵미사일 및 폭격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양국이 공동 창설한 NORAD는 북미 대륙의 영공을 감시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미국이 F-35 도입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조기경보 정보 공유를 제한하거나 공동 운영 범위를 축소하겠다고 경고한 것은, 사실상 안보 연합체제를 볼모로 잡은 '무기 판촉 인질극'과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방위비 GDP 대비 5%'라는 가혹한 청구서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에 요구하는 방위비 가이드라인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토(NATO)의 기존 기준인 GDP 대비 2%를 넘어, 총 5%(직접 군사비 3.5%, 방위 인프라 1.5%) 수준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마크 카니 총리 취임 이후 캐나다가 나토 기준을 맞추기 위해 나름의 국방비 증액 자산을 투입하며 성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이를 '말뿐인 성의'로 치부하며 단숨에 86년 전통의 안보 기구를 동결해 버렸다.
이번 미국·캐나다 방위협정의 균열은 전 세계 동맹국들에게 던지는 공포 섞인 메시지다.
미국은 캐나다라는 가장 가깝고 순종적이었던 맹방을 '본보기'로 삼아, 전 세계 동맹국을 향해 "지갑을 열지 않으면 안보 우산도 치우겠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취임후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바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정책차관은 아태지역 국방안보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모범 동맹국"이라고 수시로 언급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국방정책을 설계하는 핵심 브레인으로 꼽히는 그는 전설적인(legendary) '윌리엄 콜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손자다. 투자은행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트럼프 1기 시절 국방부 전략·전력개발담당 부차관보로 활약한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중용되며 '미국 우선주의' 국방정책을 설계하는 핵심 브레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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