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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부동산 규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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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25. 17:53

주종국 객원논설위원
주종국 객원논설위원
참가자들을 극한 상황까지 이르게 하는 마라톤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것으로, 사하라 사막 마라톤(마라톤 데 사블, Marathon des Sables)이 있다. 모로코 남부 사하라 사막 지역에서 열리며, 참가자들은 며칠 동안 사막을 뛰고 현지의 캠프에서 숙박한다. 식량이나 장비는 직접 휴대한다. 일반도로 마라톤(42.195㎞)의 5배가 넘는 약 250㎞를 스테이지별로 나누어 6~7일 동안 달려야 한다. 낮 기온이 45도 이상 올라가고 밤에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등 환경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참가자 대부분은 기록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두고 있다. 실제로 참가자 중에 사망자도 여럿 나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참가자 중에 사망자나 탈수로 쓰러진 이들 대부분이 마실 물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을 마셔야 버틸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를 아끼다가 정작 몸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한복판에서 '지금 이 물을 다 마셔버리면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못 마신다'는 생존 본능이 발동되고, '당장'보다는 '앞으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극한의 갈증을 눌러버린다는 것이다.

우리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대부분 규제였다. 간혹 시기에 따라 부양책을 펴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요를 억누르려는 규제정책이 훨씬 많았다. 부동산 가격은 정부 수립 이후 단기적으로는 들쑥날쑥했지만 길게 보면 대체로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이게 단기 급등으로 치달으면 국민 불만이 커지기 때문에 정부에서 손을 대곤 했다.

규제로는 금융정책과 세금정책이 주로 동원된다. 금융기관이 소비자(수요자)에게 해주는 대출을 줄여 부동산을 사기 힘들게 하거나, 보유세(재산세, 종부세)나 거래세(취득세, 양도소득세 등)를 높여 '부동산을 사면(혹은 나중에 되팔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므로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아예 토지거래허가제 등을 통해 매수 절차를 까다롭게 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부동산거래를 완전히 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므로 정부가 내건 몇몇 조건을 충족하면 거래를 허가해 주긴 한다.

돌이켜보면 이런 규제는 분명 수요 억제를 위한 것인데,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중장기적으로는 더욱 그랬다. 큰 부동산 규제가 나와도 단기적으로만 반짝 효과를 나타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슬금슬금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반복돼 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이런 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당시 부동산 규제는 집계 기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23~28차례 나왔다. 모두 부동산값을 누르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문 정부 5년간 부동산가격은 역대 정부를 통틀어 가장 많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 아파트가격은 대략 110.4% 상승, 서울 평균 주택(빌라 등 포함) 매매가격은 70.7% 상승했다는 통계가 있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에도 여러 규제책이 적용되고 있다. 수도권 등 규제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6억원으로 제한돼 있고, 15억 초과 주택은 4억원, 25억 초과 주택은 2억원으로 고가주택일수록 한도가 작다. 또 규제지역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70%에서 40%로 낮아졌고, 총부채상환비율(DTI)도 강화됐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갭투자를 사실상 막았고 전세대출 이자 상환분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전세대출 규제도 강화됐다. 지난 10일부터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도 다시 적용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보유세 인상, 비거주자에 대한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등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은 그리 많지 않다. 매물 잠김 현상 때문에 집값이 이미 오르고 있다는 소식도 나온다. 수요 억제를 위한 규제가 이렇게 연이어 나오는데도 집값 누르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뭘까. 부동산 규제는 과연 수요를 억제하기만 하는 걸까.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주택시장 참가자들, 다시 말해 국민이 정부의 규제 의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는 집값을 누르려고 하는 것인데, 이는 '집값 상승'의 예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정부의 의도가 먹히지 않으면 집값이 많이 오르겠구나'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문 정부 당시의 학습효과가 작용하는 듯하다.

국민은 정부가 규제를 강하게 할수록 '집값이 많이 내리겠구나'가 아니라 '강한 규제를 꺼내 들 정도로 집값 상승 가능성이 크구나' 라고 해석하기 마련이다. 규제가 연이어 나오면 '정부가 어지간히 급한가 보네'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이런 인식이 널리 퍼지다 보니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 지정했을 때 '오를 지역을 정부가 찍어줬다'라는 관측마저 나왔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의 규제는 참가자들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게 된다. '규제를 이렇게 할 정도면 집값 상승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전월세도 많이 오르니 내 집이 없는 난 이제 어디서 살아야 하나'라는 조바심이 드는 것이다. 결국 규제가 수요를 줄이는 게 아니라 크게 자극해, 참가자들이 무슨 수를 쓰든지 집을 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규제가 수요를 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극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정부가 과연 이 메커니즘을 바꿀 능력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주종국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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