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니치렌 스님의 불법 만나 삶의 전환
신사 참배 거부하며 신앙과 양심의 자유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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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웹사이트는 마키구치의 삶과 사상을 지리학자·교육자·종교개혁가라는 세 가지 흐름으로 조명한다. 생애와 시대별 활동을 비롯해 명언·논평·학술논문·사진 자료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마키구치는 일본 니가타현 아라하마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근대화의 변화를 직접 체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깊이 바라보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고, 1903년 주요 저작 '인생지리학' 출간의 바탕이 됐다. 그는 지명을 암기하는 기존의 지리교육을 넘어, 인간의 삶과 지역·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리학의 관점을 제시했다.
이후 도쿄의 여러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며, 교육의 목적을 국가나 제도에 순응하는 인재 양성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삶 속에서 가치를 창조하고 행복을 실현하도록 돕는 데 두었다. 이러한 신념은 제자 도다 조세이와 함께 정리한 '창가교육학체계'로 집대성됐고, 1930년 11월 18일 제1권 출간을 계기로 창가학회의 전신인 창가교육학회가 출범했다.
마키구치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1928년 니치렌(日蓮·1222~1282) 스님의 불법(佛法)과의 만남이었다.
한국SGI에 따르면 마키구치는 법화경(法華經)과 니치렌 스님의 불법에서 모든 인간에게 존엄한 가능성이 있으며, 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열어 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발견했다. 이는 그가 평생 추구해 온 '가치창조' 사상과 깊이 맞닿아 있었다.
한국SGI 측은 "마키구치에게 종교는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삶 속에서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고 더 나은 가치를 창조하도록 돕는 실천의 길이었다"며 "이후 창가교육학회는 교육개혁을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한 사람의 생명 존엄과 행복을 중심에 둔 불법 실천 운동으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국주의는 천황을 신격화한 국가신도 사상을 앞세워 사회 전반을 통제하고, 국민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했다. 마키구치는 이러한 흐름이 한 사람의 생명과 행복을 중시하는 니치렌 불법에 어긋난다고 보고, 신사 참배와 국가신도 신찰 수용 강요를 거부하며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지켰다. 결국 1943년 2대 회장이 되는 도다 조세이 등과 함께 투옥됐고,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1944년 11월 옥중에서 생을 마쳤다.
한국SGI 관계자는 "마키구치가 제시한'한 사람의 행복'과 '가치창조' 사상은 도다 조세이, 이케다 다이사쿠로 계승되며 창가학회의 평화·문화·교육 운동으로 확장됐고, 오늘날 전 세계 192개국·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한국어 웹사이트는 그 사상의 원점과 계승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온라인 자료관"이라며 "마키구치 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한국 사회에 전하는 중요한 창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