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이디푸스' 리뷰 최수종의 열정·남명렬과 박정자의 관록 돋보여 속도감은 강점, 비극의 깊이는 조금 아쉬워
오이디푸스_최수종, 이오카스테_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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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이디푸스'의 한 장면. /수컴퍼니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은 250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오늘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오이디푸스'는 이 거대한 질문을 어렵게 풀어내기보다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서사와 빠른 호흡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인터미션 없이 이어지는 90분의 공연은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사건은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전개되고, 코러스와 영상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몰입감을 높인다. 그리스 비극 특유의 난해함보다는 인간 오이디푸스의 감정과 선택에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 덕분에 고전을 처음 접하는 관객도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오이디푸스_최수종, 크레온_최수형, 코러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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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이디푸스'의 한 장면. /수컴퍼니
다만 속도감이 강점인 만큼 아쉬움도 남는다. 비극의 핵심 장면들을 쉼 없이 압축해 보여주다 보니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의심하고 받아들이며 무너져가는 내면을 충분히 음미할 시간은 다소 부족하다. 공연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면 인간 오이디푸스의 고뇌와 비극성이 더욱 깊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대는 매우 '연극적'이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사실주의보다 상징성과 표현성을 택했고, 절제된 무대 위에서 몸짓과 시선만으로 공간을 만들어낸다. 특히 코러스는 단순한 해설자를 넘어 운명의 목소리이자 오이디푸스의 내면을 비추는 또 하나의 인물처럼 기능하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연극만의 미학이 살아 있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연기한 최수종은 공연 내내 거의 무대를 떠나지 않은 채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다. 진실을 향해 끝없이 걸어가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열정은 단연 인상적이다. 다만 일부 장면에서는 발성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고, 출연 배우들 전반이 높은 톤과 강한 에너지로 대사를 이어가다 보니 장면마다 강약의 대비가 조금 더 살아났다면 감정의 파고가 더욱 입체적으로 전달됐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코린토스사자_남명렬, 오이디푸스_최수종, 이오카스테_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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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이디푸스'의 한 장면. /수컴퍼니
이오카스테 역의 서영희는 비극의 중심에 선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최수종과 안정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남명렬은 힘을 과시하지 않고도 무대를 장악하는 노련한 연기로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아내고, 박정자는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객석을 울리는 목소리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왜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한다.
'오이디푸스'는 철학적 깊이를 일부 덜어낸 대신 대중성과 몰입감을 선택한 작품이다. 그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정극이 됐다. 동시에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움직임과 배우들의 육체성, 현장성이 살아 있어 무대 예술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공연은 8월 2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