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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서 이승만 서거 61주기 추모식…고성국 “통찰·결단·현실주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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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도쿄 특파원

승인 : 2026. 07. 1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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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은 일본총회장 "한미동맹·농지개혁 대한민국 발전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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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6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최영재 도쿄 특파원
일본 도쿄에서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6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이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농지개혁을 되짚으며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의미를 강조했다.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일본총회는 이날 오전 11시 도쿄 지요다구 재일본한국YMCA 국제홀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행사는 국민의례와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 상영, 추모사, 임명장 수여, 추모강연,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가 열린 재일본한국YMCA는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이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을 발표한 조선YMCA의 전통을 잇는 곳이다. 현재 회관에는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이 마련돼 있다.

추모강연에 나선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는 이스라엘 건국의 역사 이상으로 드라마틱하고 기적적이다"며 "그 기적의 역사를 시작한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고 박사는 국내 정치 상황을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표현으로 짚었지만, 강연의 대부분을 이 전 대통령의 생애와 국가 건설 과정에 할애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을 수십 년 앞을 내다본 통찰력의 지도자, 판단한 내용을 행동으로 옮긴 실천가, 국제정세와 국내 여건을 냉정하게 계산한 현실주의자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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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61주기 추모식에서 고성국 박사가 강연하고 있다./최영재 도쿄 특파원
고 박사는 이 전 대통령이 조선 말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태어나 배재학당과 한성감옥 생활, 미국 유학을 거치며 새로운 세계관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에서 쌓은 학문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외교독립운동을 벌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46년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통해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이른바 '정읍 발언'을 이 전 대통령의 현실주의적 판단을 보여주는 사례로 들었다. 당시에는 분단을 굳히는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소련이 점령한 북한의 상황과 미·소 대립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길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고 박사는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이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외교 성과로 꼽았다. 그는 이 조약이 마련한 안보 기반 덕분에 한국이 소모적인 군비경쟁을 줄이고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자원을 투입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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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61주기 추모식에 전시된 이승만 대통령의 재일동포 격려 관련 사진/최영재 도쿄 특파원
◇한재은 "자유와 번영의 나무 더 키워야"
한재은 일본총회장은 추모사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농지개혁을 이 전 대통령이 남긴 핵심 유산으로 제시했다. 한 총회장은 "강력한 안보동맹을 통해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며 "경자유전 원칙에 따른 농지개혁은 오랜 토지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을 경제의 주체로 세우는 경제적 민주화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이 뿌리내린 자유와 번영의 나무를 더 크게 키워야 한다"며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합과 전진으로,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평화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1960년 4·19혁명 뒤 하야했다. 1965년 7월 19일 미국 하와이에서 별세했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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