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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인권 챙겼다가 교섭 의무?…인권실사법·노란봉투법 충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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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기자

승인 : 2026. 08. 2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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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직·간접 공급망까지 인권실사”
전문가 “실사 이행이 사용자성 근거 안 되게 안전장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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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인권침해 위험까지 살피도록 하는 '기업 인권실사법'의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내면서 이른바 '노란봉투법'과의 충돌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권실사법에 따라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안전과 근로환경에 관여한 행위가 노란봉투법상 원청의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청 노동자의 인권을 챙기려 원청이 적극적으로 나설수록 오히려 사용자성이 인정돼 교섭 의무를 부담할 가능성이 커지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23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 20일 국회에 계류 중인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안' 2건을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했다. 이른바 기업 인권실사법으로,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이 자사와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환경 위험을 파악하고 예방·완화한 뒤 그 이행 여부까지 점검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인권위는 기업이 살펴야 할 '공급망'의 범위도 넓게 설정해야 한다고 봤다. 기업과 직접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뿐 아니라 기업 활동과 간접적으로 관계된 업체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1차 하청을 넘어 재하청 등 공급망 아래 단계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위험까지 실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다.

쟁점은 원청이 이런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의 근로환경에 어느 수준까지 관여하게 되느냐다. 인권침해 위험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예방하거나 개선하려면 하청업체에 작업환경이나 안전 등의 개선을 요구하는 상황이 불가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사용자 범위와 맞물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개정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그 범위에서는 사용자로 보도록 했다.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영역에서는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권실사법에 따라 하청·재하청의 인권과 근로환경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볼수록 해당 근로조건에 대한 원청의 지배·결정력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그 관여 행위가 거론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셈이다.

대기업 소속 한 노무사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복리후생이나 안전 문제까지 챙기게 되면 근로조건에 대한 통제로 비칠 수 있는 여지가 커질 것 같다"며 "인권위의 권고를 충실히 이행할 경우 오히려 하청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리스크를 원청이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인권실사 의무와 다른 노동관계법상 사용자성 판단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다른 법률이 부여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원청이 하청에 관여한 행위가 다시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문제는 인권실사법에 앞서 산업안전 분야에서도 논란이 돼 왔다는 설명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사례로 들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일정한 경우 원청에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원청이 법에서 정한 안전관리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하청의 작업환경 등에 관여한 사실이 불법파견이나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요소로 다시 활용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법률상 의무를 이행한 것이 또 다른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문제가 인권실사법에서도 반복되지 않도록 이른바 '세이프 하버(Safe Harbor)'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법률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이뤄진 행위에 대해 일정한 요건 아래 다른 법률상 책임을 제한하거나 판단에서 구분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박 교수는 "이 법에 따라서 원청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는 이유로 다른 법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여지는 차단시켜줄 필요가 있다"며 "법과 법 사이에는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인권 보호라는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원청의 부담이 커지더라도 재하청 등 간접적인 공급망까지 실사 범위를 넓히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급망이라고 하면 기업이 공급받는 모든 영역까지 포괄하는 것"이라며 "기업이 그 영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고 심각한 인권침해를 방지할 책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방글라데시 등 해외 생산현장에서 아동노동 착취로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를 예로 들며 "재하청까지 포괄하지 않고서는 인권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가장 핵심은 그쪽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안 해왔던 것을 하라고 하니 부담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 부담이 생겨야 인권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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