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논골담 언덕 명태덕장은 이제 거의 다 사라졌지만
담백한 먹태-코다리조림, 짭쪼름한 동해바람과 어울려
쓸쓸한 덕장 지키는 건 이젠 노부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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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불판 위에서 피어나는 뜨거운 생명력
꼼장어 한 점은 예나 지금이나 바다를 품은 항구도시 부산을 상징한다. 부산과 동해의 맛은 결이 다르다. 부산의 맛이 뜨거운 불판 위에서 순식간에 살아나는 '직관의 불맛' 이라면, 동해의 맛은 차가운 해풍과 오랜 기다림 속에서 깊어지는 '시간의 맛'이다.
꼼장어의 여운을 뒤로하고 동해행 KTX-이음에 올랐다. 열차는 태화강과 경주·포항을 지나 영덕과 울진, 삼척의 능선을 넘어 북으로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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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이 장엄한 풍광을 눈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성난 파도가 철길과 나란히 숨을 고르며 달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정학 동해시장이 최근 국토교통부를 찾아 KTX 증편을 적극 건의하고 나선 이유는 영남지역 주민들의 동해안 접근성을 높여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열차 운행이 늘어날수록 묵호항의 짭조름한 공기와 논골담길의 벽화 골목, 추암의 촛대바위와 망상해변이 더우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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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를 지탱해 온 바람…덕장의 마지막 풍경
"묵호를 먹여 살린 것이 명태였지요." 논골담길 초입에서 만난 조인호(72)·신경훈(71) 부부의 한마디에는 오랜 세월의 무게가 배어 있다. 남편 조 씨는 60년 가까이 덕장을 지켰고, 아내 신 씨 역시 40여 년을 평생 남편 곁에서 명태를 손질하고 매달았다.
묵호항에 만선이 항구 노동자들은 무거운 명태 짐을 지게에 짊어지고 가파른 논골담길을 숨가쁘게 올랐다. 언덕 위 덕장에 주렁주렁 걸린 명태는 묵호 앞바다의 매섭고 차가운 해풍을 맞으며 얼고 녹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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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가 북어로 변모하는 과정은 자연의 조화만으로는 불가능했다. 날마다 기온과 습도를 가늠하고, 해풍이 불어오는 방향을 살피며 적기를 알아채는 덕장 노인들의 오랜 경험과 투박한 손길이 필수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논골담길은 바람이 막힘없이 드나들고 이슬과 서리의 피해가 적어 명태를 말리기에 최적이다.
"전통 방식으로 북어를 쑤는 덕장이 이제 묵호항 전체를 통틀어도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덕장의 명맥을 지켜온 부부는 이제는 장비를 내려놓을 채비를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창밖을 채우던 명태 덕장이 사라진 풍경을 바라보는 부부의 눈빛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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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뿌리, 전혀 다른 결…바람이 빚은 미식의 양면
먹태는 화려한 양념을 거부하고 본연의 담백함으로 승부한다. 노릇하게 구워진 살점을 손으로 지긋이 찢자 결을 따라 가볍게 바스러진다. 입안에 넣으면 겉면은 바삭하지만 속살은 촉촉한 결이 살아있다. 오래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과 함께 명태 고유의 깊은 감칠맛이다.
여기에 주인장이 13가지 한약재를 넣고 오랜 시간 빚어낸 담금주를 곁들이면 풍미가 그만이다. 부드러운 술 한 모금을 머금은 뒤, 먹태 한 점 씹으면 한약재의 그윽한 향이 고소함을 더하고, 먹태의 짭조름함은 다시 잔을 부른다.
반면 백번가 코다리 식탁은 커다란 접시 위로 붉고 매콤한 양념을 듬뿍 머금은 코다리와 시래기, 달큰한 무가 푸짐하게 어우러졌다.
젓가락을 대자 코다리 살은 부드럽게 발라지면서도 단단한 형태를 유지했다. 반건조 과정을 거치며 살집의 조직이 야물어져 진한 양념 속에서도 탄력을 잃지 않았다. 입안에서는 매콤달콤한 양념의 감칠맛이 먼저 치고 나오고, 촉촉하면서 쫄깃한 생선살의 식감이 혀를 감싼다.
여기에 부드럽게 삶아진 시래기는 양념과 생선의 맛을 깊숙이 머금었다. 코다리 한 토막에 시래기와 무를 얹어 한 입에 넣으면, 산과 바다의 맛이 한 그릇에서 화합한다.
부전에서 동해까지 하나의 철길로 매끄럽게 이어진 길. 그 길 위에서 부산의 뜨거운 불꽃을 만나고, 동해의 깊은 바람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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