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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해야 한다’와 ‘했다’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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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기자

승인 : 2026. 09.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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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0월 30일 미 육군항공대가 시험하던 보잉 모델 299가 이륙 직후 추락했다. 기체나 엔진에는 이상이 없었다. 조종사가 조종면 잠금장치를 풀지 않은 채 이륙한 것이 원인이었다. 사고 이후 조종사 '체크리스트'가 생겼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기억이나 당부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 장치였다.

경찰에도 실종 사고 대응 체크리스트가 있다. 실종 신고가 들어오면 귀가·연락 여부, 평소와 다른 행동, 이유 없는 휴대전화 전원 차단 등을 살펴 위험도를 고·중·저로 평가한다. 작성은 의무다.

제주 장모씨 실종 사건을 맡은 경찰관은 이 위험도 평가를 하지 않았다. 장씨와 연락이 닿은 것처럼 사건을 종결했고 실종자 관리목록에서도 삭제했다. 신고를 접수한 지 2시간30분여 만이었다. 장씨는 실종 10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의무라고 적힌 절차가 한 사람의 판단으로 건너뛰어졌고 이를 걸러내는 과정도 없었다. 규정의 '해야 한다'는 현장의 '했다'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건 이후 경찰은 실종자의 안전을 원칙적으로 직접 확인하도록 했다. 사건 종결 때는 관리자 승인을 받도록 했다. 전날 접수된 실종 신고를 경찰서장이 매일 점검하는 절차도 마련했다. 위험도 평가 방식도 고도화하기로 했다.

새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현장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전국 148개 실종전담팀 가운데 111곳은 야간에 한 명이 근무한다. 신고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한 사람이 신고를 받고 위험도를 판단하고 현장까지 확인해야 한다. 경찰도 이런 구조에서 부실 대응 가능성을 인정했다. 해야 할 일을 더 늘리는 것만으로는 의무가 지켜진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결재선을 늘린다고 사정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장씨 사건 담당 경찰관이 허위 종결한 다른 실종 사건에서는 상급자의 승인까지 있었다. 담당자가 작성한 기록을 확인하지 않은 채 도장을 하나 더 찍는다면 그것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절차 하나가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의 문제점은 체크리스트 항목의 부족이라기보다 체크리스트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규정에 '의무'라고 적는 것만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는 없다. 지킬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지키지 않았을 때 다음 단계에서 반드시 걸러지게 해야 한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장씨 사건 등을 두고 경찰 수사·행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며 업무 전반의 '재설계'를 언급했다. 재설계가 필요하다면 출발점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경찰이 스스로 반드시 하겠다고 정한 일을 현장에서 실제로 하게 만드는 것부터다. 경찰의 본령인 '민생'과 '치안'은 결국 그런 기본에서 시작한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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