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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도 객석도 모두 일본인…도쿄서 한판 벌어진 ‘사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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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도쿄 특파원

승인 : 2026. 09. 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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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와세다대 동아리서 출발 '백화'…졸업 뒤도 韓장단 이어 재일동포3세 이창섭 30년 지도…韓전통음악, 日일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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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까지 뛰어든 한판: 12일 오후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에서 열린 사물놀이 '백화' 공연에서 일본인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연주자들과 함께 장단을 타고 있다. 이날 공연은 연주자와 관객 모두 일본인으로, 공연 막바지에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진 채 한데 어우러졌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얼쑤." "좋다"
12일 오후 1시30분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 나카초의 고가네이 플라워홀. 장구와 북, 꽹과리 소리가 빨라지자 객석의 손뼉도 덩달아 빨라졌다. 앉아서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소고를 들고 장단을 맞추는 사람도 있었다. 부모를 따라 온 어린아이들도 조그만 북을 들고 뛰어나왔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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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공연에서 일본인 연주자가 한국 무속의 시나위 선율을 바탕으로 망자의 혼을 청하는 사설을 한국어로 구연하고 있다. 시나위는 전라도 지역 굿에서 발전한 즉흥적 기악 합주 양식으로, 무속 의례에서는 신이나 망자를 청하고 위무하는 노래와 사설이 함께 이어진다. 언어뿐 아니라 한국 무속의 장단과 의례적 맥락까지 익혀야 해 외국인 연주자가 한국어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눈에 띈 것은 이들이 모두 일본인이라는 점이었다. 한국 사물놀이 공연이었지만 연주자도 일본인, 객석을 채운 관객도 일본인이었다. 한국인에게도 이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물놀이가 도쿄 서부의 작은 공연장에서 일본인들만의 손으로 한판 벌어졌다. 공연장인 고가네이 플라워홀은 JR 무사시코가네이역에서 걸어서 4~5분 거리에 있는 소규모 공연장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팀은 사물놀이 '백화(白花)'. 백화의 뿌리는 와세다대 한국 전통예능 동아리 '시나위'다. 이 동아리 또한 일본인 학생들이 만든 것이다. 대학 시절 시나위에서 한국 전통음악을 배우던 일본인 학생들이 졸업한 뒤 직장인이 돼서도 장구와 북을 놓지 않았고, 다시 모여 만든 것이 백화다. 이들을 오랫동안 지도해 온 사람이 재일동포 3세인 이창섭 일반사단법인 민족음악원 대표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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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3세인 이창섭 일반사단법인 민족음악원 대표이사가 장고를 연주하고 있다. 이 대표는 사물놀이 창립 멤버 이광수 명인에게 사사한 뒤 일본에서 사물놀이와 한국 전통음악을 가르쳐 왔다. /민족음악원
◇히로시마 출신 재일동포 3세, 사물놀이에 빠지다
이 대표는 1970년 히로시마현 쇼바라에서 태어났다. 재일한국인 3세다. 어린 시절 히로시마시로 옮겨 자랐으며 스스로 "감각적으로는 거의 일본인 의식을 갖고 성장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그가 청년기에 한국 전통음악을 만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는 사물놀이 창립 멤버인 이광수 명인에게 사사한 뒤 1996년 이광수 민족음악원에 입단했다. 한국에서 100회 이상 공연을 경험한 뒤 2001년 활동 거점을 도쿄로 옮겼다. 현재 민족음악원 대표이사와 한국 민족음악원 일본지국장을 맡고 있으며 주일한국문화원 세종학당 장구 강좌와 도쿄한국학교 사물놀이 지도 등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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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4명이 펼치는 사물놀이: 12일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에서 열린 '백화' 공연에서 일본인 연주자 4명이 꽹과리·징·장구·북으로 사물놀이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와세다대 한국 전통예능 동아리 '시나위'에서 활동한 뒤 졸업 후에도 한국 전통음악 연주를 이어오고 있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민족음악원 일본지부는 한국 전통음악 공연과 강습을 통한 한일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2009년 출범했고, 2014년 일본에서 일반사단법인으로 정식 설립됐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이 대표의 작업은 이제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국악을 보여주는 단계'를 넘어섰다. 그의 일본인 제자들이 다시 일본인에게 한국의 장단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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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공연이 끝난 뒤 일본인 관객들이 자리에서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도 관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음악에서 시작해 한국 역사까지"
이날 공연에 참가한 일본인들의 관심도 단순히 'K컬처가 좋아서'라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장고를 친 일본인 여성은 한국 전통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강렬한 리듬에 충격을 받았고, 이후 도쿄에서 열린 사물놀이 공연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 식민지 문제를 공부하는 데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그는 "역사 문제도 중요했고 음악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며 두 가지가 자신에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공연자인 일본인 여성은 한국 문화와 한반도의 역사, 일본이 과거 무엇을 했는지를 어린 세대에게 전하려 노력해 왔다는 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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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에 들어온 일본인 관객: 12일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에서 열린 사물놀이 '백화' 공연에서 한 일본인 관객이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추고 있다. 주변 관객들도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면서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한국 전통 연희의 '판'이 만들어졌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무대 앞 공간까지 관객들이 들어왔다. 박자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함께 손뼉을 쳤다. 연주를 '감상'하는 공연이라기보다 장단 속으로 들어가는 마당에 가까웠다.

일본에서 한국문화의 인기는 더 이상 K팝과 드라마, 음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와세다대 학생들이 대학 동아리에서 두드리기 시작한 한국의 장단이 졸업 뒤에도 이어지고, 다시 일본인 관객을 무대 앞으로 불러내고 있다. 12일 고가네이의 작은 공연장은 한국 전통문화가 일본에서 '보는 문화'를 넘어 일본인 스스로 연주하고 즐기는 문화로 뿌리내리고 있는 한 장면을 보여줬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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