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 방명록에는 ‘제주에서의 추억’ 빼곡하게 담겨
작은 친절로 민간외교관 역할…중국 등서 감사패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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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도록"… 101번 버스에서 만난 풍경
"어서 오세요." 땡큐 "안녕히 가세요. 땡큐…중화권이다 싶으면 중국어로.
짧은 말이었지만 형식적인 인사와는 결이 달랐다. 목적지를 묻는 관광객에게는 정류장과 이동 방법을 천천히 설명했고, 외국인 승객에게는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다정한 손짓을 함께 건넸다.
20년 넘게 운전대를 잡아온 전형원 기사는 2017년 제주 버스 준공영제 시행과 함께 금남여객에 입사해, 현재 5년째 101번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버스는 성산, 표선, 남원을 거쳐 제주 동부지역과 공항을 이어주고 있다..
그가 운전하는 버스 안에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바로 승객들의 온기가 차곡차곡 쌓이는 '방명록' 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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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버스를 '인생의 기억'으로 만든 노트
한 승객은 주황빛 한라봉을 정성스럽게 그린 뒤 이렇게 적었다.
"제주의 겨울은 한라봉이 맛있게 익어가는 계절. 바람 없고 따뜻한 날, 올레길에서 101번 버스를 혼자 타고 성산 가는 중. 멋진 기사님과 제주길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갑작스러운 비를 만난 스페인 여행객은 난처했던 순간 101번 버스를 만나게 됐다며 "이 아름다운 버스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돼주었고 따뜻하게 보호해줬다"고 적었다.
서울에서 온 한 학생은 "101번 기사님과 우정여행 왔어요. 열심히 놀고 먹고 즐기다가 현실로 돌아가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원하는 대학에 가겠다"는 다짐을 남기기도 했다.
방명록은 누가 시켜서 만든 관광 홍보물이 아니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하루와 제주에서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난 작은 기록관이었다. 전 기사는 국내외 승객들이 남긴 이 소중한 글과 사진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노래가 인사가 됩니다."
방명록 속 한 중국인 관광객은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는데 기사님의 중국어 안내방송이 너무 유창해 놀랐다"고 감탄했다.
안내방송이 끝난 뒤, 버스 안은 때때로 작은 음악회로 변신한다. 이탈리아 성악곡과 프랑스 샹송, 남미의 노래가 흐르고, 중국인 승객들에게는 '첨밀밀'과 '펑요우(朋友·친구)'를 들려준다. 울림이 좋은 차 안에서 퍼지는 노랫소리에 승객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영상을 찍고 환하게 웃는다.
JIBS제주방송 등 지역 언론에서도 전 기사가 다국어를 독학해 제주를 안내하고 이탈리아 가곡을 들려주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승객들은 "버스가 비행기나 여행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고 입을 모았다. 국적이 달라도 박수를 치는 순간만큼은 모두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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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외교관이자 '제주 관광의 얼굴'이 된 친절
당시 전 기사는 "제주가 너무 좋다는 관광객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며 "제주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늘 다가갈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같은 해 제주도와 제주도관광협회가 진행한 미담 콘테스트에서도 141건의 사연 중 주요 사례로 선정되며, "제주를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은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의 따뜻한 환대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아가 2024년 주제주 중국총영사관이 주최한 리셉션에 초청돼 중국 노래 '펑요우'를 부르며 한중 우호의 의미를 전하기도 했다. 버스 안의 작은 친절이 민간 외교의 무대로 이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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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광의 체온을 높이는 사람
그가 강조하는 친절은 거창하지 않다. 상대방의 눈을 먼저 바라보고, 한 번 더 설명하며, 미소를 담아 인사를 건네는 일이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의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버스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은 고국으로 돌아가 제주의 온기를 알렸고, 누군가는 다시 제주를 찾겠다고 약속했다.
세화고 앞에서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흔히 제주 관광의 경쟁력을 말할 때 방문객 수나 항공편, 숙박 시설의 규모를 먼저 계산하지만 여행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콤달콤한 한라봉 감성을 싣고 전형원 기사의 101번 버스는 오늘도 제주 동쪽의 푸른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