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 이동 분주…유르타·카라반-사라이 이동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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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영토는 과거 동서 문명을 연결했던 실크로드의 주요 통과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중국의 비단이 유럽으로 이동하던 길을 넘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이란, 서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진 여러 교역로의 네트워크였다.
카자흐스탄 매체 카즈인폼은 20일(현지시간) 아흐메트 바이투르시노프 코스타나이 지역대학교 사회 인문학과 세릭잔 이스마일로프 역사학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 실크로드의 가을 풍경을 소개했다.
본격적인 가을이자 수확기인 9월은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교역망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는 시기였다.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교역 물품은 중국산 비단이었지만 이외에도 많은 물품들이 거래됐다. 사프란과 후추, 생강, 계피 같은 향신료와 곡물이 오갔고, 초원에서는 양털과 낙타털, 가죽, 모피, 카펫 등이 시장으로 나왔다.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남부와 제티수(세미레치예),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남부 지역은 농업이 발달하면서 가을이면 밀과 보리, 귀리 같은 곡물과 각종 과일·채소가 수확돼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장거리 운송을 위해서는 상품의 변질을 막고 보관성을 높이는 가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포도와 살구·무화과·감 등 말린 과일과 호두·아몬드 같은 견과류과 많이 유통됐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먹거리로 남아 있다.
말과 낙타 같은 가축도 주요 교역 상품이었다. 특히 말은 장거리 이동 수단인 동시에 군사력의 핵심이었던 만큼 높은 가치를 지녔다.
실크로드 상인들에게 가을은 그해 수확물을 팔 수 있는 가장 좋은 계절인 동시에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상인들은 추위가 본격화하기 전 상대적으로 따듯한 대도시까지 이동하기 위해 말과 낙타를 이용해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했다.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교역로에는 드넓은 초원뿐 아니라 산악지대와 고개, 사막도 있어 겨울철 폭설과 혹한이 시작되면 이동이 어려워졌다. 따라서 상인들은 가능한 한 10월, 늦어도 11월 이전에 위험한 구간을 통과하려 했다.
유목 숙박시설도 자연스레 발전하게 됐는데, 유르타(Yurta)와 카라반-사라이(Karaban-sarai)가 대표적이다.
유르타는 이동식 전통 가옥으로 몽골의 게르와 형태와 용도가 비슷하다. 나무 골조에 펠트 등을 덮어 만든 둥근 집인 유르타는 유목민들이 계절과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카라반-사라이는 유르타와 성격이 전혀 달랐다. 유르타가 유목민 가족이 생활하는 이동식 주거공간이었다면, 카라반-사라이는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과 여행객이 머물던 일종의 숙박·휴식 시설로 겨울철 도시나 교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카라반-사라이에는 사람뿐 아니라 말과 낙타도 함께 머물 수 있다. 식량과 물자를 보충할 수도 있었으며, 겨울을 앞두고 건물을 수리하고 난방용 땔감과 식량을 준비하는 등 오늘날의 이동식 쉘터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실크로드 상인들은 카라반-사라이에 장기간 머물면서 인근 도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음식과 가축 사료,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며 수익을 올렸다.
실크로드를 따라 도시가 성장한 배경에는 이처럼 사람과 물자가 함께 움직이는 경제적 구조가 있었다.
장거리 이동 시 낙타는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 특히 두 개의 혹을 가진 박트리아 낙타, 즉 쌍봉낙타는 중앙아시아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데 적합했다.
가을이 되면 겨울을 대비해 낙타의 털을 깎지 않고 털이 충분히 자라도록 했다. 사람들도 양가죽 외투와 모피, 따뜻한 신발 등을 준비하고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을 가리는 장비를 사용했다.
식량 역시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복잡한 조리 과정이 필요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말린 고기와 카지(kazy·유목민 식 순대), 쿠르트(kurt·말린 요거트), 빵 등이 여행길에서 주식이 됐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에게 가을은 한 해의 수확을 결산하는 동시에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며 다음 여정을 대비하는 중요한 계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