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칼럼] 북 주민 무제한 접촉 허용, 매우 위험하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921010008035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9. 21. 17:54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전 고려대 교수
지난 17일 정부는 우리 국민의 북한주민 접촉을 차단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없앴다. 정부가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을 통해 현행법과 달리 통일부 장관이 남북 민간 접촉 시 신고를 선별·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현행법은 '북한 주민과의 접촉 시 통일부 장관에게 신고' 의무와 함께 '남북 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때나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때'에는 통일부 장관은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권한이 있다. 신고 의무와 거부 권한은 민간 차원의 남북 접촉에 대한 제약적 규범이자 통제장치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안은 제약적 규범과 통제장치를 삭제하고 대신 국민에게 '사후 결과 보고서'만 제출하게 하고 미제출 시 과태료 부과 등의 약한 제재 조항만 덧붙였다. 통일부는 개정안을 '남북 민간 접촉의 자기 완결적 신고' 체제라고 평가하고, 법무부와 국가정보원 등 관련 부처도 찬성 입장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난 2월 통일부 주도의 관계 부처 협의에서 국가정보원은 국가안보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이번 협의에서 수용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몇 개월 사이에 안보 위해 요소가 약화·제거되었다는 징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안보 부처가 입장을 바꾼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무제한 접촉 허용으로 1990년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이후 36년 만에 남북 민간 접촉에서 생길 안전장치가 사라지게 된다. 특히 통일부는 민간 접촉자의 '자기 완결적 신고서'를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간첩, 종북 주사파는 허위로 신고할 게 뻔하다. 결코 믿을 수만 없다. 즉 무제한 접촉 허용이 북한 측 인사와 전화·이메일을 주고받거나 조총련 인사들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면서 북한 간첩에게 문을 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현행 법체계에서도 다수의 법령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즉 2021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33건이 적발됐고, 조총련 관계자를 신고 없이 접촉했던 사례도 5건이나 된다.

정부가 민간 차원의 무제한 접촉 허용을 통해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단절된 남북관계의 숨통을 열어 안정적 남북관계를 조성해보려는 고충은 이해된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의 선의를 선의로 응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고, 민간 차원의 남북 접촉을 통제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정부 개입이 어려워진다는 문제도 있다. 또한 안보를 매개로 대화를 끈을 이어가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하책(下策) 중 하책으로 판단된다. 이런 정부의 정책 전환이 국가안보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높여 향후 큰 대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나름의 제약적 규범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제약적 규범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협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한 규범은 더 엄격해야 한다. 안보가 위협을 받으면 국가정체성과 일상적 질서 유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정체성 위협과 관련된 안보를 '존재론적 안보'라고 한다.

'존재론적 안보'는 '근원적 실존의 안정감'으로 '자기 이해와 일상적 질서의 안정성에 관한 문제'다. 즉 정부의 정책 변화가 정책적 물질적 이익을 제공하더라도, 국민에게 익숙한 질서에 혼란을 초래하게 되면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면 물리적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정체성의 연속성과 일상적 질서를 지키는 선택이 더 안전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존재론적 안보'는 국민이 자기 정체성의 지속성과 일상의 예측 가능성에 대해 갖는 기본적 신뢰(basic trust)다. 또한 '존재론적 안보'는 국민이 어떤 질서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이 확신은 반복되는 일상과 익숙한 관계를 통해 재생산된다. 따라서 '존재론적 안보'는 국민이 국가와의 관계에서 설명·구축되어 온 틀(frame)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바로 정체성 차원의 불안이 있을 경우 '존재론적 안보'에도 불안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존재론적 안보'의 위기는 물리적 생존을 곧바로 위협하지는 않지만, 자기 정체성과 일상적 질서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정체성의 안정성 확보가 중요하다.

다른 한편 생존, 손실, 외부 위협 등에 대한 위기를 '물리적 안보'라 한다. '물리적 안보'는 구체적이고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면 '존재론적 안보'는 추상적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존재론적 안보'는 근원적 실존의 안정감에 영향을 미친다. 남북주민 접촉의 무제한적 허용은 '존재론적 안보'에 심대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 오염·훼손이다.

남북 분단 80여 년의 역사는 남북이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확립하려는 치열한 경쟁의 역사다. 남북은 적대·경쟁·타협의 과정을 통해 정당성 확보를 위한 주도권 게임을 벌이고 있는데 통일한국이 완성되어야 이 게임이 끝날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의 당면과제는 체제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다. '북한 주민 접촉의 무제한적 허용'은 이러한 당면과제에 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다시 진지하게 폐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전 고려대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