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덕수궁에서 '궁중문화축전'의 일환으로 '광무에서 융희까지'라는 AI융합 전시와 공연을 운영했다.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덕수궁으로 오래간만에 출근을 했는데, 새롭고 놀라운 풍경을 대한문 앞에서 발견했다. 휴일과 주말에 관람객들이 시청역까지 줄을 서서 덕수궁으로 입장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궁궐 입장 시간 오전 9시 이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모습을 목격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대한문으로 여유롭게 입장하던 예전 모습이 선연한데, 덕수궁도 국립중앙박물관처럼 줄을 서서 입장하는 곳으로 변모했고, 경복궁처럼 외국인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궁궐의 입장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감지되었다. 최근 몇 년간 이슈의 중심이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2025년 관람객 수가 650만명이었는데, 2025년 궁궐 및 조선왕릉의 관람객 수는 1781만명이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1~6월) 경복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 등 4대 궁과 종묘를 방문한 관람객 수는 741만명으로 전년 상반기 관람객 수 694만9000명 대비 6.6% 늘어난 수치다. 물론 4대 궁 중에 경복궁의 관람객 수가 364만5000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덕수궁이 175만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렇다면 741만명 중 외국인은 몇 명일까? 총 226만7000명으로 전체 관람객의 30.6%를 차지해서 궁궐과 종묘를 관람한 10명 중 3명은 외국인이다.
10여 년 전, 인바운드 관광(외국인들의 국내관광)에 종사하는 분들을 만나서 이런 말을 들었다. "중국의 궁궐은 장대하고, 일본의 궁궐은 화려하고, 한국의 궁궐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의 궁궐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 궁궐의 자연스러움을 외국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말이었고, 그저 저렴하고 시간을 보내기 적당한 관광지였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궁궐이 시민들과 외국인들에게 어느새 줄을 서서라도 봐야 하는 필수 관광지가 됐다.
덕수궁 탐방연극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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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연극 '대한제국 1897'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궁궐은 다소 따분한 곳이었다. 학생들의 소풍 장소이자, 상춘객들의 꽃놀이 장소였으며, 웨딩 사진 촬영하기 좋은 장소이자,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한복을 입고 입장하는 관람객이 늘어날 때도 그저 국내 젊은 층의 한 시절 유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외국인마저 한복을 입고 경복궁과 창덕궁을 관람한다. 종로에는 궁궐 앞 한복 대여점이 수십 군데에 이른다. 어느새 궁궐이 청년들과 외국인들에게 '힙'한 장소가 되었다. 너무나 전통적이고 근엄해 보이는 궁궐이 '핫플'이 되기까지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궁궐에서 지속적으로 열리는 문화행사다. 2014년 5월 '국가유산기본법' 시행과 더불어 '궁중문화축전'이 2014년 시범사업을 거쳐, 201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열렸으며, 궁궐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반영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국가유산청에서는 창덕궁과 종묘, 조선왕릉 등에서 '세계유산축전'을 열고 있을 뿐 아니라 궁궐의 야간시간을 활용한 '밤의 석조전' 등 인기 있는 프로그램도 매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딱딱해 보이던 궁궐이 시민들과 외국인에게 친숙한 문화공간이 된 것이다.
궁궐과 조선왕릉이 문화공간으로 변모하기까지는 국가유산청의 노력이 있었다. '보존' 중심이었던 문화유산을 '활용'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시켰다. 이로 인해 지난 10년간 궁궐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한 콘텐츠가 늘어났다. 또한 야간 개장 및 무료입장 확대 등은 시민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궁궐로 향하게 하였다. 한마디로 문화유산을 활용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게 했고, 그 콘텐츠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유산마저 '힙'하게 만들었다. BTS의 광화문 공연, 그리고 경복궁 홍례문 광장에서 열린 KBS '불후의 명곡' 특별공연도 그런 좋은 사례들이다. 근엄하게만 보이던 궁궐과 왕릉도 이렇게 활용하자 아주 '힙'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