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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업(業)’의 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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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승인 : 2026. 10. 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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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HD현대
김소영
/김소영 산업부 기자
국내 조선·철강 등 대표적인 중후장대 기업들이 주력 사업을 넘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선사는 선박 건조를 넘어 에너지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철강사는 자원 개발에 뛰어들며 소재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업의 이름만으로 사업을 짐작하던 시대가 저물고, 산업 간 경계도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조선사와 철강사의 역할은 비교적 분명했다. 선박을 건조하고 철강을 생산하는 일이 곧 기업의 정체성이었다. 한국 산업화를 이끌어온 이들 기업의 모습은 오랫동안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었다.

기자가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접했던 울산의 조선소와 포항의 제철소도 그런 풍경이었다.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고 뜨거운 쇳물을 쏟아내던 사진은 우리나라 기간산업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마주한 이들 기업의 모습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그 변화의 바탕에는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기술력과 노하우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의 추격과 글로벌 산업 경쟁의 심화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경쟁력을 새로운 산업에 접목하며 성장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넘어, 기업 스스로 업(業)의 정의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포스코그룹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한때 제철소의 용광로로 상징되던 기업은 이제 철강을 넘어 리튬과 에너지 등 자원 개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염수리튬 생산시설을 확충한 것도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이다. 철을 생산하던 기업이 미래 산업에 필요한 핵심 자원을 확보하는 기업으로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의 거대한 조선소로 상징되는 HD현대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선박을 움직이던 엔진은 이제 인공지능(AI) 시대의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고 있다. 나아가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도 조선·해양 기술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삼성중공업 역시 바다 위에 에너지 생산시설을 건설하던 경험을 살려 부유식 데이터센터(FDC) 개발에 나섰다.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만들던 기술이 이제는 AI 산업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랜 시간 한국 산업을 이끌어온 기업들이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물론 신사업 진출이 곧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술력과 수익성을 확보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의 새로운 도전이 반가운 이유는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성장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세대가 펼쳐 볼 교과서에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지 궁금해진다. 용광로와 거대한 선박 너머,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또 다른 한국 산업의 풍경이 담겨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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