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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스스로 역사에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고 어떤 인물로 기억되길 바랐을까? 어떤 칭호가 그에게 가장 어울릴까?"
그가 맡은 직책과 이룩한 업적을 살펴볼 때 자연인 박정희는 '대통령' '정치가' '지도자'로 지칭될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삶을 오랫동안 관조해 온 필자로서는 '혁명가 박정희'라는 칭호야말로 가장 적확(的確)하다고 확신한다. 박정희를 '혁명가'로 바라볼 때만 그의 삶이 전체로서, 그리고 제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이는 원래 일본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유신 3걸' 중 한 명인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가 한 말이다. 오쿠보의 부국강병 정책과 사명을 깊이 연구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적 결단의 순간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외쳤다.
첫째, 1968년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당시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나의 시대에 경제 발전을 위해 이 일을 하지 못한다면, 후일 나의 무덤에 침을 뱉어도 좋다"라며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
둘째, 운동권 민주화 신봉자들, 호시탐탐 적화야욕으로 남한 전복을 노리는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사농공상의 뒤처진 사고에 함몰되어 있던 유약한 먹물들에게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나라를 지킬 길은 목숨 건 국가적 결단밖에 없음을 천명하며, 외롭고 고독하게 유신을 선언할 때도 이 말을 던졌다.
◇'독재자' 프레임과 현대적 독재의 본질
오늘날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독재자'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본래 독재자(dictator)의 어원은 고대 로마 공화정의 비상시 임시 관직인 '딕타토르(dictator)'에서 유래했다. 전쟁이나 반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기간 법적으로 한시적으로 부여된 비상 권한의 집행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독재자'의 의미는 고대 로마의 제도적 개념과 완전히 다르다. 오늘날, 독재자라고 하면, 반정부 반체제라는 이유로 수백만~수천만 명의 인민을 숙청·처형하거나, 헛된 이념적 폭주로 인민을 기근과 아사(餓死)에 빠뜨린 '전체주의적 대량 살상 지도자'를 연상시키게 된다.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대표적 전체주의 독재자들을 보라. 마오쩌둥은 광기 어린 정책 실패에 따른 3000만명 이상의 아사자를 포함해 4000만~8000만명을 희생시켰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대숙청과 인위적 기근으로 1000만~2000만명을 처형·아사시켰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인종 학살로 1100만~1700만명 대량 학살했다. 어디 그뿐인가. 폴 포트는 광란의 킬링필드로 150만~300만명을 죽였으며, 김일성은 세습 체제 구축을 위한 숙청 기근으로 100만~300만명 이상을 아사시켰거나 처형했다.
문제는 오늘날 일부 학계와 교육 현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단지 쿠데타와 비상조치를 단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자국민을 수백만 명씩 도륙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체주의 독재자들과 동급으로 묶어 교과서에 기술하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이는 어불성설의 비(非)논리이자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자해(自害)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였을 뿐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63~1979년 동안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인원은 강력범을 포함해 총 414명이었으며, 시국 사건과 관련해 사형이 집행된 것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뿐이었다. 판결의 정당성에 대한 역사적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자국민을 학살하고 사상 검증으로 대량 숙청을 자행한 전체주의 독재자들과 박정희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전혀 성립될 수 없는 비논리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 비상 권한을 행사한 권위주의적 지도자(authoritarian leader)'였을망정, '자국민을 도륙한 전체주의적 독재자(totalitarian dictator)'가 결코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10월 10일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소신을 밝혔다.
"내가 만일 야당의 반대에 굴복하여 '물에 물 탄 듯' 소신 없는 일만 해왔더라면 나를 가리켜 독재자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일해 온 나의 태도를 가리켜 그들은 독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나를 아무리 독재자라고 비난하든, 나는 이 소신과 태도를 고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독재자'라는 억울한 비난조차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천명했다.
◇독재자가 아니라 부국강병을 이룬 청렴한 혁명가
역사상 존재했던 무수한 독재자들은 예외 없이 부정부패로 자신과 일가의 배를 채웠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청렴의 상징이었다. 혁명가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정열을 쏟아부었을 뿐, 삶 자체는 검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집권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친인척의 이권 개입이나 청와대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자손에게 단 한 푼의 특혜나 재산도 물려주지 않았다. 사후 그가 남긴 것은 5·16 혁명 이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신당동 집 한 채뿐이었다.
미국 방위산업체 사장이 무기 도입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거액의 수표 봉투를 내밀었을 때, 박 대통령은 내용물을 확인한 뒤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사장님, 하나만 물읍시다. 이 돈 정말 나를 주는 것이오? 그렇다면 이 돈의 가치만큼 무기를 더 가져오시오."
세계적인 학자들 역시 박정희를 독재자로 평가하기를 거부한다.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미국 시카고대 교수도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가 인권탄압을 했느니 독재자니 하는 일차원적 평가는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진정으로 국력을 키운 지도자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역시 박정희를 독재자로 매도하는 것을 이렇게 비판했다. "민주화란 산업화가 완성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국가의 발전 단계에 맞게 자유가 제한되었던 과정을 단순히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잣대의 불공정성 버리고 바로 봐야 할 역사
오늘날 더욱 기가 막힌 현상은 북한의 체제에 대한 일부 세력의 묵인과 이중 잣대의 적용이다. 김일성은 36년간 북한을 통치하며 수백만 인민을 아사시켰고 수용소로 내몰았다. 북한 헌법 서문에는 '수령' 김일성이 24번, '령도자' 김정일이 18번 등장한다. 전 세계 어떤 헌법에도 지도자의 개인 이름이 이렇게 도배되는 경우는 없다. 백두혈통과 주체사상을 내세우는 북한의 '수령'과 '령도자'는 독재자를 넘어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다름없다고 하면 과언(過言)일까?
그럼에도 종북주사파 세력들은 김일성을 "위수동(위대한 수령 동지)"이라고 부른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주류 언론 가운데 김일성을 독재자라고 규정하고 "독재자 김일성"으로 칭한 적이 있는가?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선뜻 '독재자' 딱지를 붙이는 자칭 지식인들이, 정작 인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에 대해서는 왜 엄격한 잣대를 대지 않거나 침묵하는가? 이는 모순 중의 모순이요, 역사적 희극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박정희 대통령에게 '독재자' 프레임 씌우기를 멈추고, 그를 국가 위기 속에서 가난을 끊어내고 현대화의 기틀을 세운 '혁명가 박정희'로 재평가할 때가 왔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현대사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본란의 기고는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광 대구대 석좌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