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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 전 日총리 별세…소비자행정·일중관계 개선 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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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도쿄 특파원

승인 : 2026. 10. 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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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연합뉴스
일본의 소비자 행정 개혁과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에 힘쓴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별세했다. 향년 90세였다. 그는 약 1년의 짧은 재임 기간 여야 대립으로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처별로 흩어진 소비자 보호 업무를 통합하는 소비자청을 설립하는데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7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쿠다 전 총리는 지난 22일 도쿄의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숨졌다. 자민당은 26일 별세 사실을 발표했다. 아버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를 이어 일본 헌정 사상 처음으로 부자가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었다.

후쿠다 전 총리는 민간 석유회사에서 일한 뒤 아버지 비서로 정계에 들어왔다. 1990년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됐다. 모리 요시로·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맡아 정권을 뒷받침했다. 2007년 9월에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사임 후 제91대 총리에 취임했다.

그의 출발부터 국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서는 다수였지만 참의원에서는 야당이 수가 많았다. 양원의 다수당이 다른 이른바 '여소야대 국회'였다. 후쿠다 전 총리는 취임 당시 자신의 내각을 "배수의 진 내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자민당이 실각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같은 해 11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와 대연정을 논의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국회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다가 2008년 9월 사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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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연합뉴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정책 유산은 소비자 행정 개혁이다. 그는 소비자 피해에 대응하는 업무가 여러 부처로 갈라져서 책임과 대응이 분산되는 구조를 바꾸려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사안을 해결하는 강력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가 추진한 소비자청은 퇴임 후인 2009년 9월 1일 출범했다.

전국소비자단체연락회 사무국장으로 설립운동에 참여하고 2012년 소비자청장을 맡은 아난 히사시는 요미우리신문에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행정을 실현하려는 결의를 느꼈다"고 전했다. 또 후쿠다 전 총리가 온화한 말투로 부처 간 칸막이 해소를 요구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후쿠다 씨가 아니었다면 소비자청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외교에서는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면서도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대화를 강조했다. 2008년 5월 일본을 국빈 방문한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는 '전략적 호혜관계'를 포괄적으로 추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의 공동 이익을 확대하고 협력을 강화하자는 기조였다.

그는 2012년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일중관계 개선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양국 관계가 냉각됐던 2014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갈등이 있을수록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정치인 시절의 직설적인 발언도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2008년 9월 퇴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설명이 남의 일처럼 들린다는 기자의 지적에 "저는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신과는 다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차분한 실무형 정치인이라는 평소 모습과 달라서 널리 알려진 장면이다.

주변 인사들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던 그의 인품을 추모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때부터 2대에 걸쳐 지역구 비서를 맡은 가세다 요시노리는 모임에 갈 때도 차를 출입구까지 대지 않고 앞에서 내려 걸었다고 전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공평했고 아첨하거나 남을 깔보지 않았다"며 "품위와 품격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던 분"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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