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재난부처 될 것 같다"…재난 주관 책임 회피 정황 확인
112 신고 11건 출동 전무·기록 수정 확인…발표 후 유가족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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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중간보고회를 열고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경찰과 소방의 초기 대응 부실뿐 아니라 대통령실과 행안부 등 중앙정부의 재난 지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참사 이후 관계기관이 공식 기록을 실제와 다르게 작성하거나 수정한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상철 특조위 상임위원은 "이태원 참사는 한 사람의 판단 착오나 한 기관만의 실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며 "위험 신호와 정보는 곳곳에 있었지만 이를 판단하고 대응을 결정하는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조위 조사 결과 참사 당일 오후 10시 기준 이태원 현장에 실제 배치된 경찰은 120명이었다. 이 가운데 마약 단속 형사는 49명이었으며 인파 관리를 위한 경비기동대는 한 명도 없었다. 당시 경찰 기동부대 81개 중 67개 부대는 집회·시위 대응에 투입됐다.
특히 용산경찰서는 경비기동대 지원을 정식으로 요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찰청의 혼잡 경비 기동대 지원에 소극적인 방침을 의식해 요청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특조위의 판단이다. 참사 당일 교통기동대 18명이 추가 배치됐지만 기존 인력과의 교대 등을 고려하면 실제 늘어난 인원은 4명에 불과했다.
경찰이 참사 당일 인파 안전보다 마약 단속에 집중한 정황도 확인됐다. 서울경찰청은 참사 전날인 2022년 10월 28일 특별형사활동 계획을 수립하고 이태원에 10개 팀 52명의 형사를 배정했다. 그러나 해당 계획에는 인파 안전을 위한 별도의 계획이나 교육·장비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참사 현장에서 수거된 유실물 200점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위은진 특조위 상임위원은 "계획의 목적은 가시적 형사활동이었다"며 "인파 안전 대책과 인력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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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의 재난 대응 과정에서도 심각한 공백이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2022년 7월부터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명시된 재난 컨트롤타워 관련 문구의 삭제를 추진했다. 참사 이후에도 삭제 절차를 이어가 2023년 3월 해당 문구를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이 상임위원은 "대통령실은 참사 전부터 컨트롤타워 문장 삭제를 계획했다"며 "참사를 겪은 뒤에도 이 계획은 바뀌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참사 당일 오후 10시 48분 상황을 인지했지만 장관에게 첫 보고가 이뤄진 것은 43분이 지난 오후 11시 31분이었다. 대통령 지시 전파도 지연됐다. 오후 11시 21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행안부 장관을 중심으로 신속한 구급과 치료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으나, 해당 지시는 55분이 지난 다음 날 오전 0시 16분에야 관계기관에 전달됐다.
특히 특조위는 이 과정에서 행안부가 재난 대응의 주관 책임을 떠안는 것을 꺼렸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당시 상황실에서는 "이거 우리가 보내는 것이 아니다", "전파하면 행안부가 재난부처가 될 것 같다"는 발언이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특조위가 조사한 행안부 재난 분야 간부 3명도 지시 전파가 늦어진 배경에 대해 "재난 주관을 피하고자 하는 공직사회의 관성", "재난 주관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 "행안부가 맡지 않았으면 하는 심리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행안부의 후속 대응도 지체됐다. 오후 11시 55분 열린 상황판단회의에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설치가 논의되지 않았으며, 중대본 주관 부서는 첫 상황판단회의에서 약 2시간이 지난 다음 날 오전 2시 1분 무렵에야 정해졌다. 행안부가 당초 중대본 가동 시각으로 발표한 오전 2시 30분 역시 실제로는 설치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시작된 시각이었으며, 첫 중대본 회의는 오전 10시에야 열렸다.
용산구의 재난 대응체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 오후 9시께 용산구 재난관리 담당자를 포함한 당직자 2명은 대통령 내외 비판 전단지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고 전쟁기념관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재난관리 담당자가 약 2시간 20분간 자리를 비웠고, 재난안전상황실에 약 1시간 15분의 공백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희생자 수습 과정에서도 국가의 대응이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 직후 추가 안치 가능 인원이 8명에 불과했던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 79명의 희생자가 이송됐다. 이후 희생자들은 서울과 경기 일대 44곳으로 분산 이송됐다. 특조위가 희생자 158명의 사망 관련 서류를 재검토한 결과 105건(66.5%)에서 사인 판정이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상임위원은 "그 고통은 고스란히 유가족이 떠안아야 했다"며 "희생자의 존엄을 지키고 마지막 경로를 가족에게 설명해야 할 국가의 책무가 어디에서 이행되지 못했는지 계속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지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피해 신고서를 제출한 314명 가운데 구호금 예산 교부를 요청한 인원은 71명, 실제 구호금을 받은 피해자는 4명에 그쳤다. 피해자 지원을 위한 원스톱 통합지원센터도 약 4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특조위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경비기동대 미배치 경위와 112 출동 기록 수정 과정에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추가 조사할 방침이다. 오는 11월 소방청 관계자 조사와 행안부의 재난 예방·대비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12월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에 대한 직접 조사도 추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