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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각가 이상근, 구조·조건·책임 연결한 ‘후기미술’ 이론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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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철 기자

승인 : 2026. 11. 0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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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니즘·에머젠티즘·노터치즘 등 세 가지 미학 체계 제시
구조·조건·발생·결과·책임으로 이어지는 순환 원리 정립
후기미술에서 후기시대로 확장…미지의 가변축 X 개념 도입
이상근 작가
이상근 작가
조각가 이상근이 구조미학 '지퍼니즘'(Zipperism), 조건미학 '에머젠티즘'(Emergentism), 책임미학 '노터치즘'(No-touchism)을 바탕으로 한 '후기미술'(Post-Art) 이론을 제안했다.

30여 년간 조각과 설치미술을 탐구해 온 이 작가는 예술을 작품의 완성이나 새로운 형식의 창조에 한정하지 않고, 창조의 결과가 기존 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최근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통해 기존 구조를 다시 변화시키는 순환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예술론은 가치의 본질과 관습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는 가치를 고정된 이상적 형상이 아닌 시대와 개인의 인식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근원적 가치와 가능성으로 설명했다. 관습에 대해서는 오랜 경험과 지혜가 축적된 질서인 만큼 부정의 대상이라기보다 계승하면서 수정·보완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그는 "기존 관습의 가치를 계승하면서 굳어진 형식과 한계를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창조가 새로운 관습을 만들고, 그 관습이 다시 창조의 출발점이 되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은 세 가지 미학 체계로 구체화된다.

지퍼니즘은 관객의 선택에 따라 작품의 구조와 형태가 달라지는 구조미학이다. 관객이 지퍼를 열고 닫는 행위를 통해 작품에 개입하고, 그에 따라 작품의 형태가 변화하는 방식이다.

에머젠티즘은 조건미학으로, 관객의 선택과 중력, 물질의 움직임, 우연성 등이 결합해 새로운 결과가 발생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완성된 형상보다 형상의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노터치즘은 책임미학이다. 작품에 대한 선택과 개입으로 발생한 결과에 책임을 부여하고, 그 책임이 이후 변화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개념이다.

이 작가는 세 가지 미학을 '구조→조건→발생→결과→책임→구조 변화'라는 순환 체계로 정리했다.

그는 "구조가 조건을 만들고 조건이 발생을 낳으며, 발생한 결과는 책임으로 이어진다"며 "책임은 다시 기존 구조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구조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과정은 동일한 상태로 돌아가는 반복이 아니라 경험과 판단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구조가 형성되는 나선형 순환이라는 설명이다.

후기미술의 주요 개념으로는 '미지의 가변축 X'도 제시했다.

X는 기존 이론과 체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지의 변수이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현재 제시한 구조·조건·책임의 체계 역시 새로운 원리와 가치가 발견되면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 작가는 "중요한 것은 X가 무엇인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에 따라 기존 체계도 수정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미술사의 흐름과 연결해 형식혁명, 개념혁명, 구조혁명, 조건혁명 등 네 단계로 구분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형식혁명,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개념혁명으로 해석하고, 지퍼니즘을 구조혁명, 에머젠티즘을 조건혁명으로 제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예술의 중심이 재현에서 형식으로, 형식에서 개념으로 이동한 데 이어 구조와 발생의 조건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미술사에 대한 작가 개인의 이론적 해석이다.

노터치즘은 이 과정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추가한다. 창조와 발생 이후의 결과를 검토하고, 그에 따른 책임이 다시 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까지 예술의 범위에 포함한다.

이 작가는 이를 '보는 미술'에서 '일어나는 미술'로의 확장이라고 설명했다. 관객의 참여와 물질의 움직임, 환경적 조건 등이 결합해 작품의 형태와 결과가 달라지는 과정에 주목한다는 의미다.

이론의 적용 범위는 예술에서 문화와 인간, 문명으로 확대된다.

이 작가는 '후기시대'(Post-Era)를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구조·조건·책임을 통해 상호작용하고 변화하는 문명체계로 정의했다.

정신문명은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고, 물질문명은 기술과 제도를 통해 현실의 조건을 변화시킨다는 설명이다. 두 영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사회의 구조도 지속적으로 수정·확장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기술 발전 자체보다 작동 조건과 결과, 책임의 관계를 중요하게 봤다.

그는 "인공지능이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고 어떤 결과를 발생시키는지, 그 책임이 사회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후기시대는 완성된 문명 모델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확장할 수 있는 체계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이론이 기존 예술과 문명을 대체하는 완성된 체계라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관습에 축적된 가치를 계승하면서 한계를 수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며 "새롭게 만들어진 가능성도 다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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