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형사 재판에서 법관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소송인 등이 해당 법관을 바꿔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수 있는 법관 기피 신청 제도의 인용 건수가 아직까지 터무니없이 적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제도에 대한 인용 건수가 적은 이유에는 기피 신청을 당한 법관이 마땅한 기준 없이 자의로 판단해 기피 신청을 기각하는 것이 한 몫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3일 국정감사 속기록에 따르면 지난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전국 기준으로 법관 기피 신청 건수가 2000건이 넘었지만 인용된 건수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심지어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인용된 건수가 3년 연속 0건이 기록되기도 했다.
물론 2008년 국정감사가 끝난 후부터 해마다 법관 기피 신청에 대한 인용률이 높아졌다.
형사 사건을 기준으로 2010년 105건의 기피 신청 중 3건, 2011년 104건 중 4건이 인용됐으며 올해 6월까지 신청된 45건 중 3건이 받아들여졌다. 수치상으로 이전에 비해 인용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독일, 일본, 프랑스 등 법제 선진국에 비하면 법관 기피 신청의 인용률이 현저히 낮은 것은 물론 기피 당한 법관이 재판에 관여를 많이 하는 등 제도적으로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반응이다.
독일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한국과 달리 기피 신청자가 항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상급법원에서 기각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또 법관이 기각할 때에는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법관이 소속된 재판소가 법관 기피 신청에 관한 기각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으며 기피 당한 법관이 아예 재판에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홍금애 법률소비자연맹 실장은 “한국과 달리 법제 선진국에서는 기피 당한 법관이 아예 재판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제도적으로 형평성을 기하기 위함”이라며 “이 제도에 대한 인용률이 높아지려면 기피 당한 법관에게 재판을 전적으로 맞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홍 실장은 “항상 법원 측에선 ‘소송인이 재판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법관 기피 신청을 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피신청을 판단하는 기간이 6개월이면 몰라도 고작 1~2개월 내에 기피신청에 대한 기각 여부가 갈리는데 이 짧은 시간을 누가 악용하겠냐”고 반문했다.
전관 출신인 모 변호사도 “사실 법관 기피 신청을 해도 대부분 인용이 안 된다. 이 때문에 소송인들이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민이 신뢰하는 법원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법원 관계자는 “법관 기피 신청 이유는 대부분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불신, 소송 지연 목적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관의 부적절한 언행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법정에서 행동이나 발언을 더 유의해서 소송인 등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