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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교육] 500달러 들고 지구 반바퀴...“지식은 경험속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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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욱 기자

승인 : 2013. 04. 07. 06:01

[희망100세]77세 인도 배낭여행가 김대하 교수
김대하씨가 인도 서북부에 위치한 자이살메르의 낙타터미널에서 낙타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제공=김대하


새로운 경험들을 꿈꾸며 생의 마지막까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 삶을 대하는 그의 긍정 에너지 앞에선 유복자란 굴레, 엇나간 진로, 사업 부도 같은 좌절의 그림자도 자리를 비킨다. 따사로운 햇살이 경운궁의 기와를 적시던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한국고미술감정연구소에서 ‘철부지 노인 배낭 메고 인도로’의 저자인 김대하 한국고미술감정연구소 지도교수(77)를 만났다.   

◇배낭 메고 떠난 실크로드, '무작정의 미학'

김대하 교수는 고미술품을 수집하느라 여기 저기 안다녀본 곳이 없는 사람이다. 88년까지는 주로 국내에 물건이 있다는 곳은 다 뒤져보느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 이후는 일본, 중국을 비롯해 경매가 열리는 뉴욕, 런던, 파리까지 일 년이면 열 번 가까이 출국했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 업무 때문에 돌아다녔다고 봐야 돼. 다니다보면 뉴욕이나 런던이나 결국 서울이랑 큰 틀은 비슷하다고 느껴지더라구. 뭐 차이가 있다면 박물관 정도랄까. 그래서 내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어.” 

김 교수가 찾은 해답은 바로 배낭여행이었다. 생애 첫 배낭여행지로는 오지에 가까운 실크로드 대장정을 선택했다. 

“실크로드를 택한 건 내 직업과도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곧바로 중국행 배편을 알아보고 인천에서 떠났지. 난 원래 결정이 빠른 편이거든. 단둥, 심양, 북경, 태산을 거쳐서 옛 당나라 수도인 서안까지 갔어. 거기가 바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야.”

이정도면 출발점까지 가는 것만도 구만리 여정이다. 그는 강의가 없는 기간 동안만 배낭여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6개월 코스인 실크로드를 세 번에 걸쳐 다녀왔다. 

배낭여행은 예상대로 되는 게 별로 없었다. 한마디로 고된 과정이었다. 한자도 많이 알고 있어 어느 정도 말이 통할거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오산이었다. 그래도 정신 바짝 차리고 그냥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1,000달러만 들고 갔거든. 아끼는 데 익숙해지니깐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알게 됐어. 어차피 최소한의 물질만 해결하면 돼. 나이 들어 고행이라면 고행을 택한 건데 여행길에서 만난 젊은 사람들도 깜짝 놀라더라고. 내 열정에 놀랐다나? 젊은이들도 열정을 가지고 살라고 조언해줬지."

여행길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 배운 것도 있었다.

"나는 사실 실크로드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아니더라고. 그냥 무작정 가보는거지. 과감하게 시작하고 부딪혀보면 안될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더라고. 나도 다음엔 어딜가볼까하고 생각하는데 알고 있는 곳 말고 다른 여행지들도 눈에 들어오더군. 젊은이들과 대화하면서 생각이 바뀐 것 때문이지 싶어."  

김대하씨가 인도 카즈라호에서 휴식을 취하는 현지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공=김대하

◇여행은 경험이 알려주는 해답

2년에 걸친 실크로드 대장정에서 돌아온 그는 다음 목적지로 인도를 정했다. 인도는 만 가지 언어와 종교로 이뤄져있으면서도 복잡함을 단순하게 만드는 나라다. 그런 생각으로 출발한 인도는 이런 수식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나라였다.

“인도는 참 묘해. 그곳은 분명 무질서와 혼돈이 지배하고 있는데도 평온이 깃들어 있는 곳이란 말이지. 대부분 인도 사람들이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고 절대 ‘모른다’는 얘기는 안해. 내가 길을 물어보면 자기들도 모르면서 막 아무렇게나 가르쳐 준다니깐.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유지되는 곳이라니 참 신기한 곳이지. 그런데 인도에서 경험한 하나하나가 해답을 알려주더군."

인도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역 대합실에 가면 바깥 날씨를 피해 들어온 소가 낮잠을 자고 있단다. 그 옆엔 소 주인이 자고 있고 그 모습에 신경을 쓰는 건 오직 여행자들뿐이다. 

심지어 길바닥에 큼직한 소 배설물이 있는데 그 옆에서 태연히 자는 사람을 볼 때면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한다. 

"이제야 깨달았지만 인도란 나라는 경계가 없는 나라야. 소의 배설물이나 사람의 배설물이나 같은 거고 무질서와 평온도 따지고 보면 같은 거지. 어려운 철학 이야긴데 말이야. 장자가 그랬다잖아.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사람 입장에서는 소 배설물이 더럽지만 소 입장에서는 사람 배설물이 더 더럽거든. 무질서와 평온함도 마찬가지지. 우리는 질서라는 것을 기준으로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걸 무질서라고 하지. 그런데 무질서가 기준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질서가 이상한거야. 결론은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지. 인도는 모든 게 자유로운 나라인 것 같아."

최첨단 IT기업들이 들어선 곳에서 대부분 고유의상을 입고 다니고 교통신호기가 설치된 곳조차 사람이 먼저인지 차가 먼저인지 모른 채 거리낌 없이 길을 건너다니는 곳이 바로 인도인 것은 인도를 자유의 나라로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경험'의 세계

인도 여행이야기를 실컷 하던 그가 갑자기 딴 생각에 잠기더니 달라이 라마 이야기를 꺼낸다.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로 돌아오면 항상 여행자들이 모여 북적이는 곳이 있다. 그 곳에서 김 교수는 며칠 안으로 미국에서 달라이 라마가 들어와 법회를 연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티베트로 달려갔다.

“프랑스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 법명을 받은 무진스님이란 분이랑 법회에 같이 갔어. 그분은 스님이라 앞자리에 앉았는데 나는 자리가 없어 뒤에 혼자 있었지.

달라이 라마가 멀리 보이는데 한 30~40미터 떨어져있었나? 어차피 말이 안 통하니까 그 사람 얼굴만 뚫어져라 보면서 집중했었는데 무슨 말인지 감이 오더라구. 마음을 비우고 욕심에서 해방돼야 한다는 이야기 같더라고. 나중에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았어. 온몸에 전율이 일더군.”

그는 과거 사업 부도를 통해 욕심이 그를 옥죄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자신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고 생각했고 사업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다. 이런 경험이 언어를 뛰어넘는 깨달음을 준 것이다.

법회에서 티베트의 한 승려와 친분을 맺게 된 한국인 이야기도 들었다며 말을 시작했다.

“그 친구가 6개월 동안 티베트 승려랑 무얼 했는가 하면 말이야 ‘공(공)’사상에 관해 토론을  했다잖아. 자기는 영어로 말하고 승려는 티베트어로 말하고 상대방 말을 전혀 모르는 채로 그렇게 했다더군.” 

법회 이후 김 교수는 인간이 언어로 이야기 하는 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은 경험에 의해 깨닫고 언어는 그것을 좀 더 명확하게 해 줄 뿐이라는 것이다.

김대하씨는 지난달 29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고미술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정필 기자

◇아버지들이여, 배낭을 메고 떠나라

김 교수는 다시 인도여행이야기를 하면서 3박4일 동안 버스만 타고 갔던 때를 회상했다. 그때 어디론가 향해 계속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가난 속에서 보냈던 학창시절, 잘 살아보겠다고 설탕공장을 해서 부도를 맞았던 시기, 발이 부르틀 때까지 미술품을 찾아 헤매던 때 모두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던 과정에서 만난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여행했던 걸 떠올리면 머릿속이 생생하니 젊어진다니까. 배낭여행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선물이야. 지금도 배낭을 메고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배낭여행을 통해 세상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다는 새로운 신념을 갖게 됐다는 김 교수는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면 인간과 자연, 미술작품 등 이 모든 만물에게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마인드도 젊어진다는 걸 느낀단다. 

그래서 김 교수는 격동의 세월을 겪고 이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해줄 말이 있단다.

“늙었다는 생각 말고 술도 이제 그만 먹고 술값 아껴서 여행을 떠나란 말이야. 가이드 따라다니면서 수다 떠는 ‘깃발부대’ 하지 말고 배낭여행을 가봐. 필요한 건 25kg 배낭을 멜 수 있는 체력과 한 달을 버틸 500달러면 되거든. 다들 빨리 용기를 내봐!” 

허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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