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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림의 역지사지]전 대통령·대기업부터 안방까지…난 ‘비자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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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림 기자

승인 : 2013. 06. 11. 18:17

*요즘 날 숨겨둔 '사람 돈벌레'들이 많다던데
전 세계적으로 ‘사람 돈벌레’들이 득실거려서 난리더라. 부잣집에서 많이 발견돼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는 생긴 것만 징그럽지 바퀴벌레도 죽이는 이로운 벌레래. 근데 사람 사는 세상의 돈벌레는 날 뒤로 숨겨놓고 피해만 주는 해충이네. 이건 뭐 일베충도 아니고.

난 서민들의 세금을 숨겨 만들어진 더러운 검은 돈 비자금이야. 주로 경영인들이 무역이나 계약에서 사례금, 수수료를 회계 조작으로 은닉하면서 태어나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건 날 숨겨둔 조세피난처야. '케이만 군도' '버진 아일랜드' '파나마' '마셜군도' '쿡아일랜드' 등 9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놓고 돈 버는 족족 그쪽으로 매출액이 흘러가도록 하는 거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모두 여기 날 숨겨뒀다지. 북한 기업들도 있다더라.

라디오 프로그램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한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한국담당자에 따르면 애플은 조세회피처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에 지적재산권을 양도해서 매출액 모두 그 곳으로 들어가도록 했대. 애플 제품으로 번 돈은 고스란히 회사로 간 셈이야.

범위를 좁혀서 우리나라로 오면 더 심해. 뉴스타파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6일, 이 작은 나라에서 돈 잘 버는 개인, 기업이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날 만들었다고 보도했어.

한화 김승연 회장도 날 숨겨놨다는 이유로 4월 15일 서울고법 형사7부(윤성원 부장판사)가 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했어. 이분 더러운 돈을 만져 병에 걸렸는지 건강이 안 좋아서 구속집행정지 상태라네.

CJ는 나 때문에 검찰 수사 받으면서도 그 사이에 또 날 숨겨놔서 난리났지. 내가 중독성이 강하긴 하지만 이건 좀 과하잖아.

전 재산 28만원인 전두환 전 대통령도 화제야. ‘전두환 추징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지. 그의 장남 전재국은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고 차남 재용은 노숙인까지 동원해 날 차명관리 했대.

이 사람들 아버지는 재산이 28만원 뿐이라는데 자기들은 뒤로 날 만들고 있었던 셈이잖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란 사람도 나 덕분에 골프치고 다녀서 자식들이 보고 배운 건 아닐까.

공교롭게 지난해 국세청 조사로 노태우 전 대통령한테도 내가 있었다는 게 밝혀졌대. 11일 법조계와 관련업계는 노 전 대통령 측 운전기사인 정 모 씨가 농협과 국민은행 등 5개 금융기관, 9개 계좌에 모두 날 숨겨놨다는 거야. 물론 노 전 대통령은 다 부인하고 있지만.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널려있는 나. 시야를 좁혀 안방 침대 매트리스 밑, 장롱 밑, 책갈피 속을 살펴봐.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도 사실은 나와 각별한 사이란 걸 알게 될 거야.
장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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