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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코로나19에도 수천 명 달린 베트남 마라톤 뛰어보니…

[르포] 코로나19에도 수천 명 달린 베트남 마라톤 뛰어보니…

기사승인 2020. 10. 1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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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베트남 문체부·하노이시와 VP뱅크 공동개최 아세안2020 마라톤 대회 열려
현장 3000명, 온라인 2000명 참가…하노이 명소 곳곳 누벼
참가 전 의료신고·어플 설치 필수, 대회시작하니 마스크는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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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시에서 열린 ‘VP뱅크 하노이마라톤-아세안2020’에서 주자들이 대회 출발에 앞서 손소독·마스크착용·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사진=하노이 정리나 특파원
“2020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의장국을 맡게 된 베트남이 오는 18일 아세안 2020 마라톤을 연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 지난 16일, 내외신을 대상으로 한 베트남 외교부의 정례 브리핑에서 나온 레 티 투 항 대변인의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 가운데 수도 하노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뛴다는 것이 가능할까. 본지 기자가 직접 ‘내돈내뛰(내 돈 내고 내가 뛰기)’에 나섰다.

◇ 레이스 참가 전 의료 신고·어플설치 필수
18일 열린 아세안2020 마라톤은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하노이시 인민위원회와 VP뱅크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당초 아세안 10개국 대표 등 외국 선수들도 초대한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무산됐다. 이 대회가 내건 표어는 “새벽을 맞이하며, 안녕 뉴노멀(New Normal)”이다. 18일 자정에는 42.195㎞의 풀코스가, 오전 3시에는 21㎞의 하프코스가 출발했고 아침부터는 10㎞·5㎞ 구간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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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키트 수령에 앞서 손소독과 발열 체크를 진행하고 있는 현장 직원들의 모습./사진=하노이 정리나 특파원
한국에선 참가 티셔츠·배번표 등 레이스키트가 택배로 집까지 배송되지만 베트남에선 통상 대회 1~2일 전 현장에서 직접 수령한다. 이번 아세안2020 마라톤은 레이스키트 수령 전 베트남 보건부 웹사이트를 통한 의료신고와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 여부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블루존의 설치를 의무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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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키트 수령을 위해 참가자들과 대회 주최측이 온라인 의료신고·블루존 어플리케이션 설치 등을 확인하고 있다./사진=하노이 정리나 특파원
레이스키트 수령을 위해 찾은 하노이 호안끼엠 현장에서는 주최측이 수령 창구 앞에서 수령에 앞서 손 소독·발열 체크·마스크 착용을 확인했다. 직원은 우선 신분증과 블루존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확인했다. 이후 의료신고를 마치면 나오는 QR코드까지 최종 확인 후에 레이스킷을 받았다. 퇴근시간이 겹치며 레이스키트 수령을 위해 찾아오는 인파도 늘어났고, 금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파격적 행보로 베트남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끈 도안 응옥 하이 전(前) 호찌민시 1군 인민위원장도 현장을 찾아 화제가 됐다. 마라톤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해 러너들의 ‘아이돌’이기도 한 그는 “42.195㎞ 풀코스를 달릴 예정”이라 말했다.

◇ 뛰기 시작하니 마스크 벗어…하노이 명소 보며 달리는 재미 쏠쏠
18일 오전 2시 20분, 가벼운 준비 운동도 할 겸 현장에 일찍 도착했다. 이미 수백 명의 주자들이 준비운동을 하며 스타트 라인에 서있었다. 현장에서도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위해 스타트 라인 구역으로 입장하기 전, 손소독·발열측정·마스크 착용을 확인했다. 마스크를 가져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현장에서 마스크를 제공하기도 했다.

스타트 라인 구역으로 입장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별도의 제지도 없었다. 마스크를 벗은 옆 사람에게 “마스크를 벗어도 괜찮은 것이냐”했더니 “마스크를 쓰고 어떻게 하프(21㎞)를 달리나?”하고 되물었다. “한달 넘게 코로나19 발생도 없었으니 괜찮다”는 말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안전하니까 대회를 개최한 것이다”라고 말을 보탰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고 달리던 중에 익숙한 얼굴 몇몇을 발견했다. 베트남 중앙부처 공무원들이었다. 역시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 인사를 건네자 “숨차지 않느냐”는 말이 되돌아 왔다. 두번째 급수포인트를 지날 때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자의식 과잉인걸까 하며 어리둥절하고 있던 찰나, 베트남 외교부 직원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평소 활동하던 달리기 동호회와 함께 자원봉사를 나왔다는 그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정말 괜찮겠구나 싶어 마스크를 아예 주머니에 넣고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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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롱(하노이의 옛 이름) 황성 앞을 지나는 주자들의 모습./사진=하노이 정리나 특파원
코스를 따라 달리자 베트남과 하노이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주요 명소 곳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중국에 맞서 싸운 민족왕조의 역사가 서린 호안끼엠에서 시작, 하노이 구시가지를 거쳐 제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였던 메트로폴 호텔을 지났다. 하노이 시내를 가로질러 탕롱(하노이의 옛 이름)황성, 호찌민묘 등을 지나 서호 쪽으로 달리는 길에는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앞도 지났다. 작년 2월 북미정상회담 차 방문했다 대사관을 들렀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봤던 곳이다. 같이 달리던 주자 일부가 “너희 빨리 통일해”란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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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에서 주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달리고 있는 모습./사진=하노이 정리나 특파원
시내 곳곳을 달리는 동안 티셔츠에 있는 태극기를 보고 거리 곳곳의 시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한꿕 꼬렌(한국 화이팅)”·“코리아 꼬렌”등을 외치기도 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달리는 것은 물론, 거리 곳곳의 시민과 자원봉사자들이 주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응원하기도 했다. ‘뉴노멀’보다는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프코스는 프랑스 식민시대에 지어진 롱비엔 다리를 달려 홍강을 건너갔다 호안끼엠으로 되돌아오며 마무리됐다.

이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다수였다. 타인(36)씨는 “하노이 시내를 달리기 위해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차를 빌려 5~6시간을 왔다”고 말했다. 남부 호찌민시에서 왔다는 한 주자는 “요즘 같은 시기에도 마라톤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인데, 아세안 의장국기념이란 의미도 크고 수도를 달릴 수 있다기에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 46일째 코로나19 감염 無…방역 성과 ‘자부심’
주최측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는 총 5000여 명이 참가했다. 현장에서는 3000여 명이 달렸고, 함께 진행된 온라인(언택트) 대회에는 약 2000명이 신청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수천 명이 모여 거친 숨을 내뱉는 마라톤 대회를 연다는 것은 어지간한 확신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베트남은 18일을 기준으로 46일째 코로나19 국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 한달 넘게 국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중앙·지방부처로서는 정권 안정을 위해서 코로나19 방역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 중앙·지방부처가 마라톤 대회 개최를 승인했다는 것은 코로나19 상황을 잘 통제하고 있고, 방역 성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코로나19 시국에도 마라톤 대회를 여는 기염을 토했지만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외에 제작을 주문한 완주 메달이 코로나19로 제때 배송되지 못해 완주 주자들에게는 종이 메달이 우선 수여된 것이다. 주최측은 “화물비행편이 코로나19로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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