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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설국 울릉도, 성인봉 설경이 뭐길래…

[르포] 설국 울릉도, 성인봉 설경이 뭐길래…

기사승인 2020. 12. 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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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11일 경북 울릉도 성인봉 설경.
올해 초 신년을 계획하면서 첫눈이 오면 눈 쌓인 성인봉을 촬영할 것을 다짐했었다.

지난달 28일 지인이 “나리분지에 첫눈이 내려 쌓였다”고 연락이 왔다. 카톡으로 온 몇장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그 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촬영 할 생각과 나자신과 약속한 버킷리스트를 지키기 위해 나리분지를 찾았지만 사진으로 본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고 있어 산행을 포기하고 발 길을 돌렸다. 이후 이틀간 날씨가 엉망이었다. 계속 비까지 내리는 날씨를 지켜보니 마음까지 무거워 졌다.

30일 아침 밝은 햇살이 창문커튼을 뚫고 마음에 와 다았다. 오랜만에 맞는 맑은 날씨에 카메라를 챙겨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이리저리 이동을 하며 저동항의 아침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지나가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씻지 않고 나온 내 모습을 느꼈다. 부끄러운 마음에 대충 인사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성인봉 산행으로 인해 들뜬 마음을 부여잡고 기사를 송고 하는 도중에 오랜만에 보는 지인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안부와 함께 지역에 전반적이 이야길 나누다가 점심을 같이 하자는 제안에 약속이 있다며 돌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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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경북 울릉도 나리분지에서 장재고개로 올라가는 산행코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5㎝ 가량 쌓여 있다./조준호 기자
간단히 요기 후 산행을 위해 나리분지로 이동했다. 코스는 나리분지에서 장재고개를 지나 말잔등에서 성인봉을 오르고, 하산은 역으로 성인봉-말잔등-장재고개-저동리로 계획하고 산행시간은 최대 4시간을 잡았다.

이전에 가 본 코스였다. 그리 힘들지 않을 것으로 생각 후 심호흡을 한 후 오후 1시20분께 출발했다.

이런 계획이 잘못됐다는 것을 출발한 지 채 40분도 되지 않아 느꼈다. 출발한 나리분지는 눈이 전혀 없었고 성인봉 쪽으로 올라봐도 군데군데만 눈이 조금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틀간 비가 내려 눈이 녹았을 것이란 짐작은 완전 오판이었다.

얇게 깔린 눈을 밟고 장재고개까지 다다른 시간은 35분 정도라 계획대로 강행할 생각으로 평시보다 속도를 올렸다. 말잔등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에는 10㎝, 많은 지역은 20㎝ 가량 눈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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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경북 울릉도 장재고개에서 말잔등을 올라가는 코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눈길이 인상적이다./조준호 기자
겨울 산행 장비인 스패츠(일명 각반, 신발과 바지 밑 무릎을 감싸 눈이나 비를 막아주는 장비)와 아이젠을 챙겨오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눈 속으로 빠지는 신발, 신발 속으로 밀려드는 눈, 잠시 휴식을 취하면 녹은 눈으로 인해 축축한 한기가 발가락을 오므리게 했다.

말잔등 정상에 도착해서 또다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상상 외로 많이 쌓인 눈 때문에 예상과 달리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포기하고 내려 가라는 생각과 주위 펼쳐진 장관을 본 마음은 ‘성인봉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란 환상을 생각하며 올라가라고 재촉했다.

결국 마음의 지시를 따랐다. 힘든 코스도 지났으니 시간이 좀 부족할 뿐이라며 현 상황을 회피했다. 말잔등에서 본 설국 풍경은 과히 장관이었다. 능성이 좌우로 펼쳐진 시야에 북면의 절경과 아름다운 울릉읍 저동리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나무들 마다 눈꽃이 피고 있었다. 겨울 내내 아름다운 눈꽃이 만들어 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말잔등은 울릉읍 저동리와 북면 나리의 경계에 있는 산등성이로 형세가 말의 잔등 모양과 흡사해 ‘말잔디’ 또는 ‘말잔등’이라 부르는 성인봉 방향으로 약 10여리 이어진 능선을 일컸는다. 중앙부에 공군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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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경북 울릉도 성인봉 인근 말잔등에서 바라본 울릉읍 방향. 멀리 죽도가 보이며 산에는눈꽃이 본격적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조준호 기자
4시쯤 말잔등을 타고 내려와 성인봉에 다다랐을 때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갑자기 불어치는 바람과 발목까지 빠지는 눈구덩이는 성인봉 정상을 막고 있었다. 더욱이 한발 전진이 힘든 상황에 잘못 디뎌 미끄러지는 상황에 직면해 속도를 더디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신발 속은 녹은 눈이 가득 차 신발 속에서 발이 미끌리는 상황이었고, 언제 얼었는 지도 몰랐던 바지는 냉동실에 얼려 놓은 광어처럼 움직일 때 마다 얼음칼날이 돼 다리를 스치는 고통이 보폭의 부자연스럼움으로 이어지게 했다.

‘장애는 힘들 뿐’이라는 생각으로 한발 한발 전진한 결과 성인봉에 다달았다. 그 순간 해는 먹구름에 가려 어둠이 덮쳤다. 송곳 모양의 돌위에 성인봉이라는 글씨 밖에 안보였다. 경치도 오히려 말잔등이 나았다. 실망을 한 순간, 땀이 식어 몸에서 발열하는 수증기와 함께 하산에 대한 두려움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불안감은 신과 종교를 찾게 만든다는 것이 진리였다. 성인봉 정상에서 귤 두 개와 음료수 한병을 내려놓고 아주 진지하고 애절하게 산신께 절을 했다. “부디 무탈하게 하산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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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경북 울릉도 성인봉 정상 모습./조준호 기자
깜짝 산신제(?) 마친 후 하산을 시작했다.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지났고 어둠이 나를 따라 오는 듯했다. 산은 해가 일찍 진다는 것을 몸소 실감했다.

하산은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 오판이었다. 발을 잘못디뎌 미끌리면서 넘어지기 일쑤였고 내딛는 하중 때문인지 무릎까지 눈 속에 빠져들었다. 말잔등에 다다랐을 때 어둠이 깔렸고 주위 경치 볼 겨를 도 없이 내달리듯 하산을 했다.

숨은 턱까지 차고 무리하게 사용한 근육들은 통증으로 이상경고 쉴새없이 보냈지만 쉴 수가 없었다. 신발 속에 찬 눈으로 인해 한기가 점점 심해졌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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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경북 울릉도 말잔등에서 성인봉으로 가는 구간. 이름모를 동물이 지나가면서 발자국을 남겨 놓은 모습. /조준호 기자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려움 때문에 속도를 올렸던 것 같다. 장재고개까지 도착하니 이제부터 쉬운구간이라는 안도감에 스피드를 줄였다.

그러자 이제 옴몸에서 통증의 강도를 세게 보내고 있었다. 참을만 했다. 때마침 둥근달이 떠 사물을 분별할 수 있어 밝은 달빛을 밟고 하산을 했다.

무사히 귀가 후 울릉군청에 근무하며 울릉산악회의 중추적인 일을 담당하는 산악전문가인 최종술 팀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최 팀장은 “말잔등에서 성인봉 코스는 가장 눈이 많이 쌓이는 곳으로 비경은 좋지만 준비하지 않고 동행없는 겨울산행은 위험한 코스”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 산행보다 겨울 산행은 최소 2.5배 이상 소요을 계산하고 계획해야 하며 겨울장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산밑에선 비가 내리지만 산 정상부는 눈이 내리며 계속 쌓여 4월까지 간다. 무모한 도전을 귀엽게 여겼는지 정말 산신이 도왔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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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경북 울릉도 말잔등에서 바라본 북면 방향. 멀리 송곳산이 보인다. /조준호 기자
성인봉 높이를 두고 설왕설래한다. 인터넷이나 책자, 울릉군지 등에서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다. 수년 전 국토지리원이 최근 상황을 반영해 986.4m로 공식 발표했다. 성인봉은 산이 높고 유순하게 생겨 세인들이 말하기를 마치 성인들이 노는 장소같다고 해서 성인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울릉도는 비단 성인봉처럼 주위 곳곳에 많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속살을 잘 안보여주는 곳 중 하나다. 그 비경에 빠진 한 산악인은 해마다 울릉도를 찾는다. 올 때마다 그 모습이 틀리기 때문에 반했다고 한다. 그는 11월부터 쌓인 눈은 4월까지 가는 곳도 있다고 했다.

울릉도는 겨울철이면 설국으로 변한다. 설국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고립과 애환을 이야기 하지만 언젠가 분명 큰 관광자원과 산업자원이 될 것이다. 단편적으로 말잔등과 성인봉 주위에 펼쳐진 절경은 성인봉의 유래처럼 정말 성스럽고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접근성만 해결되다면 관광성장에 큰 동력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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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보름이 하루 지난 30일 울릉도 성인봉에서 하산하면서 바라본 둥근달이 구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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