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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20] 소설가 김별아의 희망편지 ‘잡을 수 없는 손을 멀리 내민다’

[아듀 2020] 소설가 김별아의 희망편지 ‘잡을 수 없는 손을 멀리 내민다’

기사승인 2020. 12.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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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역병,
결국 극복하고 이겨낼 것,
오직 사람만이 희망이다.
전화로든 화상으로든
안부 묻고 보듬자.
김별아 소설가 사진 1
김별아 소설가
지난해 태어나 올가을 첫돌을 맞은 아이는 집 안에서 놀다 지루해지면 벽에 걸어놓은 마스크를 뒤집어쓰는 시늉부터 한다고 한다. 마스크를 쓰는 행동이 바깥으로 나가는 신호인 셈이다.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한 아이의 눈에 세상은 마스크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린 사람들이 조심조심 서로를 피해 다니는 곳일 게다. 필터를 통과한 들숨과 날숨이 자연스럽고, 체온을 재고 소독제를 손에 바르는 일이 당연할 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한 아이도 가엾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봤기에 괴롭다.

얼마 전 재출간을 위해 원고를 정리하다가 어느 에세이에서, “언젠가 멀지 않은 시일 안에 암과 에이즈 등의 불치병은 정복될 테지만, 인간은 그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갈 것”이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10여 년 전에 환경오염을 경고하며 쓴 글이었는데, 내 예감이 들어맞았음에 기쁘기보다 어이없었다. 그렇게 쓰면서도 몰랐다. 역사서에서나 읽었던 ‘역병의 창궐’로 이런 세상이 올 줄은, 와도 이런 식으로 예고 없이 들이닥칠 줄은.

2020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상한 한 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공공연해지면서 모든 집합 행위가 중단되거나 축소되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칸막이를 치고 ‘혼밥’을 먹는 일이 장려되고, ‘셧다운’된 나라들과 단계별로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어났다.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분리하고 고립시켰다. 그리고 사람들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지던 경제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 활동을 마비시켰다.

행운과 불운은 이웃이라, 그 와중에도 온도차는 있다. 비대면과 재택근무 등을 위시한 뉴 노멀(New Normal)이 가속화된 반면,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고통과 불행을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라 할 것 없이 힘들고 괴롭고 지난했던 나날이었다. 그래서 2020년이 저문다는 것이 아쉽기보다 후련하기도 하다. 가라, 다시는 만나지 말자!

다가올 2021년도 2020년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것 같지는 않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전염병 극복의 길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집단면역이 생기고 경제가 활성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회복되는 순간까지 우리는 견뎌야 한다. 견딘다는 것,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거나 죽지 않고 계속 버티면서 살아 나가는 그 상태가 지금처럼 절박한 시절이 없다.

견디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는 “인류의 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것은 희망”이라고 했다. 희망! 몽상이나 이상이 아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물질적·정신적으로 절망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생활고는 극심해지고 우울은 만연해졌다. 희망은 굶주린 육신과 영혼이 먹고 살기 위해 붙들어야 할 유일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혼자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불신과 불안으로 거리두기를 하며 접촉을 피했던 타인들, 오직 사람만이 함께 희망을 일굴 수 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 멀리 있는 사람들도 살펴야 한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와 의료진들, 폐점하거나 휴업한 자영업자들, 비대면 수업에 지친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들, 요양원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노인들과 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들, 취업난에 좌절한 취업준비생들......그리고 이 기이한 역병의 시대를 기어이 견디고 있는 모두가 서로를 연민과 전우애로 보듬어야 한다. 갈라치기 대신 연대가, 비난보다 격려가 절실하다. 연락을 해야 한다. 전화로든 비대면 화상으로든 안부를 물어야 한다. 비록 잡을 수 없는 손일망정 멀리 내밀어 뻗어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반드시 지나간다.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토록 이상했던 2020년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만, 하루만 견디고 살아내자. 무너지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절망과 우울에 굴복하지 말고. 우리 모두의 건강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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