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진인 조은산이 말한다] 부산은 재미있다

[진인 조은산이 말한다] 부산은 재미있다

기사승인 2021. 11. 21. 18:06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부산은 재미없다.’ 얼마 전 여당의 대선 주자가 한 말이다. 부산을 방문한 그가 지역 스타트업 기업가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실언이었다. 아마도 수도권과 대비된 지방 발전의 현실을 말하려다 튀어나온 불의타였을 것이다. 불필요한 사견을 덧붙이면 꼭 불필요한 논란이 뒤를 잇는다. 상대 진영 후보의 전두환 발언, 개 사과 논란 등에서도 그리 많은 걸 배우진 못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야당보다 여당발 실언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말과 글은 결국 목적성을 갖고 나아갈 뿐이다. 생각의 나열과 기억의 기록에 그치는 범부의 그것과는 다르게 정치인들의 말과 글은 더욱 의식적으로 목표물을 파고든다. 그들에겐 국민을 계몽할 권리가 있으며 사상적 동화를 위해 비전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광폭적인 정치 행보 속에서, 광폭적인 말과 글들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에게 어쩌면 말실수쯤이야 기꺼이 감내해야 할 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끔 지칠 때가 있다. 정치는 말로 하는 예술이라는데, 때론 말꼬리 잡는 기술의 영역이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직 본격적인 대선 일정에 돌입하기도 전이지만, 그간의 과정에서 숱한 실언 논란과 함께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그토록 치열했다. 한국 정치가 만일 지금보다 성숙하고 유연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많은 것들이 있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방명록 논란은 ‘지평선’을 시작으로 최근의 ‘반듯이’논란까지 이어졌고, 국민은 정책과 역량이 아닌 그의 국어 활용 능력에 대한 검증을 지켜봐야 했다.

웹툰 스튜디오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오피스 누나’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작품을 보고 염려스러운 마음에 ‘이거 확 끄는데?’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부분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또 어떤가? 국민은 일 잘하는 대통령을 원하지, 성인군자를 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실언다운 실언도 있었다. 윤석열 후보의 전두환 옹호 발언이 그랬고 이재명 후보의 자영업 허가총량제 발언이 그랬다. 전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광주의 아픈 과거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었고, 후자는 마찬가지로 취지는 이해하지만 헌법 정신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상식에서 벗어난 그의 사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논란다운 논란이었고 국민은 해명을 들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유의미한 논란이었다.

첨예한 기세로 맞붙은 선거 직전의 구도 정치에서, 각 정당의 숙명은 비전보다 네거티브에 치중함으로써 완결된다. 정책적 우월감보다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게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 있어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침소봉대식의 네거티브 공세는 결국 국민을 증오의 정치 한가운데로 몰아넣을 뿐, 발전적 담론의 장으로는 인도하지 못한다. 무의미한 논란이 반복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유의미한 것들은 그만큼 자리를 뺏기고 물러선다. 검증의 시간은 이제 넉 달이 채 안 남았다. 미숙한 정치가 지배하는 현실이라면 국민이 정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이제 부산은 재미있다. 한국의 마추픽추(감천문화마을)가, 한국의 두바이(마린시티)가, 한국의 하와이(해운대)가 그곳에 있다. 내비게이션마저 의심케 하는 신비한 육거리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으로 끼어드는 신통한 운전자들은 부산이 가진 항구적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게다가 어찌나 그렇게들 정이 많던지, 부산 지하철에서 내 아들은 처음 뵙는 어르신의 무릎 위에 앉아서 갔다. 그러니 부산은 재미없다는 그의 말이, 비록 사려 깊은 언행은 아니었지만, 부산을 강남만큼 발전시키겠다는 그의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한 번쯤 그를 용서해 주는 건 어떨까.

결국 정치는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기 마련이다. 작고하신 어느 회장님의 말씀처럼 한국 정치는 4류에 머문다. 그런 것들을 위해 눈높이를 낮출 만큼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또한 나 역시, 내가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모든 발언을 비난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어리석은 건 진심을 보려 하지 않는 작은 마음일 뿐이다. 살다 살다 내가 이재명 편을 들게 될 줄이야. 그만큼 이제 나는 벗어나고 싶다. 이 무의미한 것들에게서 말이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