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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칼럼]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기사승인 2021. 12.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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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관악구청장
한창 자라던 학생 때 대통령이나 장군,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 올림픽 금메달 등 거창한 장래목표를 세우고 책상 앞에 표어 한 개쯤 붙여놓았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꿈이 대통령이라는 어린이에게 “대통령 되면 아빠 뭐 시켜줄래?”라고 묻자 “탕수육”이라 순진하게 대답하던 TV 광고만큼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래희망이다.

십중팔구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빨간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백마 위에서 알프스산 정상을 가리키는 나폴레옹 그림을 붙여놓고 그 밑에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집중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 같은 표어를 붙여놓았을 것이다. 그것들을 가리켜 일명 삶의 신조를 뜻하는 좌우명(座右銘)이라고도 한다.

구청장이 된 후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됐다. 기자가 여러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불쑥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순간 당황했다. 소싯적에야 일부러 좌우명을 정해 책상머리에 붙였다지만 어른이 된 이후로는 굳이 좌우명을 정하지 않더라도 지키고 본받아야 할 교훈들이 넘쳐났기에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동안의 경험상 평소 삶과 처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흔히 정치와 정치인을 말할 때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동안 우리 정치가 총체적으로 보여준 모습 때문일 수 있겠으나 오랫동안 정치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의리와 신의’를 갖추지 못해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반드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 하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비단 정치인뿐이겠는가. 의리와 신의를 지키는 것은 나와 이웃이 공존하는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리고 평소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떤 사람에게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이라도 당사자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이해되고, 오히려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면 상대방과의 신의가 훨씬 돈독해지는 것을 늘 경험하기 때문이다.

구청장에 당선된 후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구청장이 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빨리 시작했던 일이 구청사 1층의 열린민원실 ‘관악청’이었다. 매주 정기적으로 민원이 있는 주민들과 만나는 일인데 구청장에게까지 들고 올 정도의 민원이라면 그 사안의 복잡성은 굳이 말 안 해도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해당 주민은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인데 그걸 끝까지 경청하는 일이 생각보다 보통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때야말로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제대로 된 소통이 전혀 불가능하다. 구청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이 되든 안되든 일단 끝까지 들어드리면서 그분 입장이 돼 맞장구라도 쳐드리면 결국에는 “구청장이 들어라도 줘서 고맙다”는 칭찬을 듣게 되는 것이다.

요즘 TV를 켜면 모든 현안이 대선 정국에 여러 가지 설왕설래(說往說來)하여 말이 말을 만들어내곤 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기 보다는 자신이 주장을 설득시키는 일에 더 골몰하고 서로의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하는 일이 허다하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는 인물의 경쟁력과 수많은 공약을 내세워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무엇을 해준다는 약속이나 원하는 것을 주는 것도 효과가 있겠지만 상대 후보자든 국민이든 이들의 요구와 관심사에 귀 기울여줌으로써 더 큰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오랫동안 관악청을 지키면서 소중한 좌우명을 하나 더 얻었던 바,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이청득심(以聽得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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