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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회주의 속 노동자들은 ‘노예’ 처지

[칼럼] 사회주의 속 노동자들은 ‘노예’ 처지

기사승인 2022. 10. 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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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용 한국조세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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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서 경작권이 전면 부인된 사례가 있었나?

돌이켜보면 봉건사회라 하더라도 토지 외 생산수단(소, 말, 농기구 등)은 사적소유의 대상이었다. 조선의 경우 왕토사상 아래에서도 솔거노비가 아닌 외거노비는 경작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왕이 가진 토지소유권 아래, 수조권(收租權)을 가진 관료, 경작권(耕作權)을 가진 농민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생산수단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토지소유권은 신분에 따른 제한이 있었으나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타파되면서 토지소유권이란 성벽마저 사라졌다.

따라서 인류역사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대상의 확장을 통하여 개인의 자유가 신장·발전해 온 역사다. 개인의 자유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대상의 확대는 그 궤를 같이해 오고 있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모든 개인이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 근로계약이 가능한 사회로 진입하였고, 노동 등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함께 생산요소 시장이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장경제체제의 흐름에서 생산요소 시장과 생산물 시장과의 경제순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순환자체를 부정하게 되면 왜 노예사회로 갈 수밖에 없는가?

◇자유인과 노예의 노동

토지, 자본 등 인격과 무관한 생산요소와 달리 인격과 결부된 노동의 주인인 나 자신이 근로계약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 노예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인류사에 자유노동과 노예노동의 생산력 차이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전면 부정되는 사회의 구성원은 경작 의무만 있어 노예노동의 생산력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 사회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생산물조차 생산해 내지 못하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구성원 전부를 노예노동화한 경우는 없었다. 고대노예사회에서도 전 사회구성원이 아닌 특정한 신분, 즉 노예에 한하여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원천 봉쇄되었다. 북한의 인민경제계획법에서는, "인민경제계획에 없는 제품생산과 건설은 할 수 없다(동법 제36조)"고 하여 중앙당국의 결정 없이는 어느 제품 하나도 생산해 낼 수 없다. 소비자주권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물론 그 생산에 필요한 자본, 자재, 노동은 모두 국가에서 제공한다.

노동은 근로계약이 아닌 명령과 지시, 그리고 처벌을 담보로 하여 제공되는 강제력이다. 결국 어떤 생산을 하더라도 자유노동이 아닌 노예노동이 되는 것이다. 인민경제계획법에서와는 달리 우리의 정부조직법에서는 국가는 민간과 경쟁되는 사업은 할 수 없고 오히려 민간사업을 돕도록 규정하고 있다.

◇계획에 대한 오해가 부르는 '나쁜' 나비효과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민간의 생산수단소유를 전면 부정한 사회주의는 외부침략 없이 자기모순으로 자멸하였으나 다시 꿈틀거리는 모습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계획경제 체제의 실패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계획을 담당한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은연중 암시하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근본적 문제가 없는 것처럼 세뇌하고 있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계획경제를 했다는 잘못된 설명도 예상치 못한 '나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면, 남북한의 경제제도 자체에 차이가 없다거나 낮은 단계 연방제 제안 등에 핵심쟁점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렵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명확하게 질문하고 답변을 요구해야 한다.

"민간의 부를 인정하는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 이를 부정하는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는 여기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질문요소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계획경제체제에서의 '경제개발계획'과는 180도 다른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인 데 반하여, 계획경제체제에서의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계획이다. 그 실패원인은 노동에 대한 강제력에 따른 노예노동 효과로 그 사회에서 필요한 생산물조차 생산해 낼 수 없어 사회구성원의 생존유지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계획'이라는 단어가 가진 이런 위험성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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