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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칼럼] 한반도 정전관리의 조용한 기여자, 중립국감독위원회

[이기성 칼럼] 한반도 정전관리의 조용한 기여자, 중립국감독위원회

기사승인 2023. 10. 0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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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정장)
이기성 전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임진각에서 곤돌라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옛 캠프 그리브스 내에 중립국감독위원회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 4개국인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단의 1950년대 초기 활동 내용과 당시 DMZ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판문점에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원회 인원들이 이동하는 동선을 줄이기 위해 습지 위에 설치한 도보다리가 있는데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다. 중립국감독위원회와 관련이 있는 이 두 장소는 안보관광지로 많은 국민들이 찾고 있지만 중립국감독위원회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중립국감독위원회(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 이하 중감위)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과 함께 정전협정 준수사항을 감시·감독하기 위하여 군사정전위원회와 함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만들어진 상설군사기구다. 중감위 국가는 6·25 전쟁에 전투원을 파병하지 않은 국가 중 남북이 각각 2개국을 선정하였다. 유엔군사령부에서는 스위스와 스웨덴을, 북측에서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각각 선임하여 정전협정에 명문화하고 1953년 8월 1일 중립국감독위원회 첫 번째 회담이 개최되면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정전협정 제2조 36∼50항에 명시된 중감위의 과업은 부대와 인원의 교대, 전투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의 교체를 감독, 감시, 시찰, 조사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립국 시찰소조를 상대방 지역의 지정된 항구 및 공항에 파견하여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인원, 전투 장비 및 물자들을 확인·감독하였다. 하지만 아군(我軍) 측 지역에 거주한 북측 시찰소조 인원들이 정전협정과 무관한 간첩 활동과 다량의 군사 장비를 들여옴으로써 물자 및 장비 반입에 대한 보고를 유명무실화하고 중감위의 기능을 무력화시켰다.

또한 유엔사가 1991년 3월 정전 체제 유지에 대한 적법한 참여자로서 한국의 역할을 부각하고자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임명하자 북한은 중감위 불참을 통보하였다. 그리고 1994년 동유럽 국가들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면서 체코의 중감위 승계를 북한이 거절하자 체코는 철수하였고, 북한은 1995년 폴란드 중감위 대표단도 철수시키고 사무실을 폐쇄함으로써 북측의 중감위는 현재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은 유엔사 측의 스웨덴과 스위스 대표단이 최소 인원만으로 판문점에 주재하며 주 1회 유엔사 측 단독으로 중립국감독위원회의를 하면서 군사정전위원회와의 협조 아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북측 중감위의 폴란드 대표단은 본국으로 철수하여 형식적으로나마 활동을 하면서 회의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협조를 얻어 참석하고 있다. 폴란드 대표단은 1995년부터 2019년까지 연 1~3회 한국을 방문하여 중감위 회의에 참석하였으나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방문하지 못하였다.

북측의 중감위 철수로 임무 수행에 제한이 발생함에 따라 2016년 유엔사, 한국군, 중감위 간의 합의를 통하여 중감위의 과업은 DMZ 내 정전협정 관련 작전 활동의 참관, 군사정전위원회의 정전협정 교육의 참관 및 지원, 연합 군사훈련 및 연습 참관 외에 유엔사·주한미군사 병력전개 활동의 확인 등으로 현실에 부합되도록 과업이 확대되었다.

중감위는 이러한 상황의 변화 과정 속에서도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서 한반도 정전관리의 조용한 기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첫째, 중감위는 1953년부터 신뢰할 수 있는 한반도 정전관리의 파트너로서 중립적이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입장에서 정전관리에 필요한 중재 역할을 다해 왔다. 중감위는 군사분계선에서 직접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신뢰구축조치를 유엔사에 보고 및 건의하면서 보이지 않은 곳에서 DMZ 긴장 완화에 기여하였다.

둘째,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사항 조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감위가 정전협정 위반을 독립적으로 조사할 권한은 없으나 연평도 포격 도발(2010), 천안함 폭침(2010), 목함지뢰 도발(2015), 무인기 도발(2022)과 같은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사항에 대한 공동 조사에 참여하여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담보하고 있다.

셋째, 중감위는 긴장상황 발생 시 모든 당사자들과 협의를 위한 법적 조정사항을 제공함으로써 정전협정의 합법성과 국제적 신뢰성을 강화한다.

넷째, 한국군과 주한 미군의 군사력이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갖는 방어용 군사력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중감위는 1995년 북한 측 중감위가 철수한 이후에도 정전협정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견지한 가운데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연합 연습 및 훈련을 참관하고 한미연합방위 체제는 한반도에서 전쟁 억제와 방어적 성격의 훈련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이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중감위는 군사정전위원회와 함께 정전협정 시행기구의 하나로 정전협정체결 이후 상황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조용히 기여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사 측 중감위 활동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정전체제 유지의 상징적 측면에서도 중감위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정전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유엔사의 역할뿐만 아니라 중감위의 역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들의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유엔사 측 중감위의 스위스, 스웨덴 대표단과 유대를 더욱 강화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북측 중감위의 폴란드 대표단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성 전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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