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르포] “버스요금 올린지 얼마 됐다고 파업하냐”…12년 만에 서울시내버스 멈춰

[르포] “버스요금 올린지 얼마 됐다고 파업하냐”…12년 만에 서울시내버스 멈춰

기사승인 2024. 03. 28. 07:4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서울 시내버스 12년만에 전체 버스 98% 파업
서울시, 비상수송대책 가동하고 지하철 증편
"매일 새벽에 회사에 가야하는데 당장 출근길이 걱정이네요. 파업이 잦아지는 것 같은데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를 입게되니 화가 납니다."

서울 시내버스 노조(버스노조)가 파업 결렬을 선언하고 28일 오전 4시를 기해 본격적인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서울 송파구 송파공영차고지 인근 복정역환승센터 입구에서 만난 김모씨(67)는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김씨는 "첫차를 타고 출근을 해야 흑석동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며 "지하철도 너무 늦고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고 말하면서 휴대폰만 쳐다봤다.

서울 버스 파업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놀란 시민도 있었다. 강모씨(32·여)는 "파업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버스가 언제오나 30분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며 "택시를 타야할 지, 지하철 첫차 운행까지 기다려야할 지 답답하다"고 걱정했다.

복정역환승센터에는 출근을 앞두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미리 버스 파업 소식을 알고 있던 한 남성이 "오늘 버스 운행 안 한다.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셔야 한다"며 시민들에게 안내하기도 했다. 삼성동으로 출근하는 한모씨(45)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뭐했냐"며 "버스 파업하는 거 맞냐"고 재차 묻기도 했다.

송파공영차고지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이 곳은 서울 시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영 차고지로 운영업체도 10개나 있다. 이곳엔 오전 4시를 기점으로 일부 버스 직원들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버스에 올라타는 기사는 한명도 없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인근 버스정류장 전광판에는 '시내버스 파업 지하철 이용 바람'이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있다. /박주연 기자


같은 시각 서울 영등포구 인근 버스정류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영등포에서 신도림으로 출근하는 이모씨(55·여)는 "전광판에 '28일 시내버스 파업. 지하철 이용 바람'이라는 문구가 나오는 걸 보고 파업이라는 걸 알았다"며 "버스가 좀 늦게 온 적은 있어도 10년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큰일"이라고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가족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야간 근무 후 퇴근해서 버스를 기다리던 박모씨(69·남)는 "파업한지도 모르고 20분 넘도록 기다렸다"며 "5-6년 동안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다녔는데 한 번도 파업한 적 없었는데 황당하다"고 말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서울 양천구 목동사거리역 정류장에서 만난 임모씨(58)는 "버스요금 올린지 얼마나 됐다고 파업까지 하냐"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여의도 인근 빌딩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다는 신모씨(72·여)는 "새벽에 갑자기 파업해버리면 어쩌냐"며 주변 시민들에게 택시 좀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28일 서울 양천구 목동사거리역 인근 한 버스정류장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김서윤 기자


날이 밝아 오면서 시민들은 지하철로 몰리기 시작했다. 오전 7시께 서울 지하철 5호선 까치산역엔 지하철을 탑승하려는 시민들과 이날부터 4.10 총선 유세에 나선 선거운동원들이 뒤엉켜 매우 혼잡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던 시민에, 버스를 이용하던 시민들까지 몰려들며 평소 유동인구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하자, 유세 현장에 나온 각 당의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만 신이 나서 더 목청을 높였다. 출근길 시민들이 몰리면서 지하철 혼잡은 극심해졌다. 지하철 탑승구에는 평소보다 2~3배 긴 줄이 늘어졌고, 시민들은 지하철 혼잡으로 3~4대를 보내고야 겨우 타는 일도 벌어졌다.

일부 마을버스는 운행을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시내버스를 타지 못한 용산구 주민 이모씨(52)는 "다행이 마을버스가 있어서 지하철역까지 갈 수 있었다. 파업 하는지도 몰라서 한참 기다렸는데, 행사에 늦을지도 모르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노조의 전면 파업은 12년만이다. 이날 오전 2시 20분께 사측인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파업을 선언했다. 노사는 전날 오후 3시쯤부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 회의를 열어 11시간이 넘는 마라톤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양측은 조정 기한인 이날 오전 0시가 넘자 교섭 연장을 신청해 대화를 이어갔지만 이견을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막판 협상이 불발로 끝나면서 오전 4시부터 예정대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28일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의 협상 결렬되면서 파업을 선언한 가운데 서울 시내의 한 공영차고지에 버스가 주차돼있다. 설소영 기자
노사 간 핵심 쟁점은 임금이다. 그동안 노조는 인천·경기지역으로 인력 유출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탈을 막기 위해 12.7% 시급 인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사측은 최근 5년간의 물가상승률·임금인상률과 비교해 과도한 요구라는 입장을 보였다. 양측의 줄다리기에 지노위가 6.1% 인상안을 제시했으나 결국 중재에 실패했다.

버스 노조에는 65개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이번 파업에 참여할 수 있는 단체교섭 대상이 되는 회사는 61개사로 알려졌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함에 따라 전체 서울 시내버스(7382대)의 97.6%에 해당하는 7210대가 운행을 멈춘 상태다.

서울시는 노조 파업에 따른 시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비상수송대책 가동에 들어갔다. 지하철 운행을 연장하고 증편하는 등 출퇴근길 대체 교통수단을 즉시 투입한다. 지하철은 출퇴근 혼잡 완화 및 불편 해소를 위해 1일 총 202회를 늘려 운영한다. 막차 시간은 종착역 기준 익일 오전 1시에서 2시로 연장해 운행한다. 지하철 출퇴근 등을 빠르게 연계하기 위해 서울 25개 자치구에서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