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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칼럼] 국민의 힘이 거듭나려면

[이각범 칼럼] 국민의 힘이 거듭나려면

기사승인 2024. 05. 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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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국민의힘, 변화하고 혁신하여야 한다
-정책으로 경쟁해야 할 정당들이 확증편향으로 깊어진 국민적 갈등 부추겨
-국가전진을 가로막는 우리나라 4류 정치
-백서발간으로 실패 복기하는 이유는 당내정치 하자는 게 아니라 희망과 성공을 예비하기 위해서다
-국민의힘은 조직, 교육, 연수, 홍보의 종합기능을 갖춘 선진정당 돼야
-국민의힘은 질적으로 구조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살려야 한다


국민의힘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풀뿌리 조직 없이 당간판과 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인지도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조직체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의힘은 현대화된 정당의 면모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역동적이고 파급력이 있는 시스템 정당이 되기 위해서,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은 우리나라 정치권 전체를 불신임하였다. 국회가 국회다운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200석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획득한 야당은 기고만장해져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인 21대 국회에서도 처리 못 한 법안들을 22대 국회에서는 강행처리하겠다고 한다.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법안을 밀어붙이겠다고 하면서 그것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 정당별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5%, 국민의힘 45.1%로 전체적으로는 불과 5%포인트 남짓한 득표율 차이가 있었다. 물론 국민의 선택은 엄중하다.

그러나 그 선택은 야당에게 위험천만한 입법독재를 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아무리 도덕불감증에 걸린 국민이라도 전과 4범에 성남시를 복마전(伏魔殿)으로 만든 수많은 범죄비리 의혹 당사자와 범법행위로 하급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인사를 대표로 둔 정당에 더 많은 표를 준 이유는 따로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남남갈등을 겪고 있고, 두 편으로 갈라진 국민들의 확증 편향은 깊어지고 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취득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나날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정책으로 경쟁해야 할 주요정당들은 국민 갈라치기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문들은 오래전에 근대화를 끝내고, 현대화를 완수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와 첨단경쟁을 하고 있다. 유독 정치부문만 아직도 근대화의 초입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경제와 문화부문은 세계 1~2류에 올라 있는데, 정치만 4류"라고 한 작고하신 어느 기업인의 말씀이 떠오른다.

서구의 민주주의는 민주적인 정당정치의 기초 위에 서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정당정치와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조(institution)가 매우 취약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회 제1당은 그 대표가 재작년 대통령선거 때 말한 대로 되었다. "지금까지는 민주당의 이재명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겠습니다."

1인 지배하의 국회 제1당과 야당 연합은 겨우 거부권(재의요구권) 하나로 삼권분립 제도를 벼랑 끝에서 지켜내고 있는 대통령을 향해 '제왕적 대통령'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여당의 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민주정당이 갖추어야 할 조직도, 정책개발체계도 없으며, 정당의 다음 세대를 육성할 교육기능과 연수기능도 없다. 이에 반해 야당의 정당조직은 운동권 시절부터 구축해 놓은 사회조직과 학습 연수 기능에 덧붙여 포퓰리스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세금 일자리로 촘촘하게 구축해 놓은 세포조직이 서로 연결된 단단한 조직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총선은 조직 대 '개인들의 집합'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명장(名將)이라도 홀로 적 군단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국민의힘은 이제부터라도 선진민주정당다운 조직체계와 교육훈련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선거 때 반짝 체험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요구하는 정치, 즉 민심을 가까이서 읽고, 반응하고 정책과 정치의 진행결과를 국민과 공유하는 홍보체계를 갖춘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더욱 공고한 민주주의의 기반을 가진 나라들에서는 이념과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아래로부터 정당을 조직해 왔다.

독일의 경우 10대 후반부터 각 지역별로 정당에 가입해서 여러 정책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정기 모임이 열린다. 여기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시의원, 주의회 의원, 연방의회의원으로 선출된다. 당의 정체성은 정책방향에 있다. 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없다. 한국처럼 여러 명의 보좌관과 비서진, 운전기사를 정부예산으로 고용하는 일 또한 없다. 의정단상에서 보좌관이 써 준 원고를 읽는 사례도 상상하기 힘들다.

이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의 정치선진화는 시급하다. 21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고, 정당 간의 정치 역시 품격 있는 정치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를 계기로 보다 근본적인, 정당 자체의 거듭남이 필요하다. 일정한 방향성을 공유하면서도 다양한 노선과 아이디어를 아우르는 제대로 된 정당의 면모들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들 그중에서도 20대 청년들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당이 국민들과 직접적으로 유의미하게 소통하고 반응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선거에서 온라인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도 빠르게 커져왔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도 온라인 대결에서 크게 밀렸다. 언론 환경은 윤석열 정부 초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야권에 우호적이다.

전체 여론형성 과정에서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10% 남짓할 정도로 밀리고, 나머지 90%에 달하는 영향력은 전자매체가 행사하기 시작하자, 이 공간에서 조직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 간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나게 되고, 한쪽의 일방적 매도가 가능하게 된다.

참패를 하고 백서를 쓸 때 그 궁극적인 목표를 잃어버리면 백서는 변명과 남 탓의 장이 되고, 국민의힘의 성공을 위한 나침반의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참패를 하고도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또 체계 잡힌 정당으로서 국민들에게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백날 실패의 이유를 파헤치고 누군가를 탓해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패를 처절히 반성하고 복기하는 뒤에는 희망과 성공에 대한 준비도 있어야 한다. 참패한 지금이야말로 국민의힘이 질적으로 구조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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