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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의 비극적 변증법: 무사의 현실주의와 문사의 이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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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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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고대국가는 무사 지배의 전투 조직

국가는 원래 전쟁 속에서 태어나 항상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조직인 만큼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국가는 모두 전투 조직이었고 그 지배층은 한결같이 무사일 수밖에 없었다. 시민이 곧 무사였던 희랍의 폴리스들은 당연히 그랬고, 시민과 무사가 구별되었던 로마제국 또한 그랬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백성을 동원했던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국가들도 역시 그랬다. 우리의 신라, 고구려, 백제, 그리고 이웃 일본도 모두 무사가 지배하는 전투 조직이었다.

국가를 전투 조직으로 보고 무사를 국가의 정당한 지배자로 보는 고대 이래의 오랜 전통은 근대 이후 시민사회의 성숙 및 국민국가의 등장과 더불어 겉으로는 일단 종식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상비군을 가진 근대 국민국가는 고대국가에 못지않은 전투 조직이었고, 시민사회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시장의 상인은 전장의 무사와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점이 꽤 많은 '시장의 무사'였다.

이렇게 보면 전투 조직으로서의 국가와 무사 지배라고 하는 고대 이래의 오랜 전통은 가히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다고 봐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사적 예외가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유교 국가였다. 유교 국가는 국가를 전투 조직으로 보지 않았고, 그 지배층은 무사가 아니라 놀랍게도 문사(文士) 즉 책을 읽는 지식인이었다.

기원전 2세기 한무제에 의한 유교의 국교화는 기나긴 중국사에 결정적인 분수령이었다. 진한시대 이전 춘추전국시대에 명멸했던 국가들은 서양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무사가 지배하는 전투 조직이었던 반면, 유교의 국교화 이후 중국은 전투 조직으로서의 국가 대신 가부장적 가족을 기초로 하여 대가족처럼 온정적인 국가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무사 지배의 시대는 끝나고 문사(文士) 지배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유교 국교화로 인한 문사 지배와 '지속의 왕국'

효제(孝悌)와 삼강오륜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유교는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이상주의적이었고 국가권력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었다. 유교와는 친화적일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이는 한무제가 왜 유교를 국교로 선택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유교를 배운 문사들 즉 유학자들이 과거시험을 거쳐 통일제국의 관료가 되자 중국 문명은 춘추전국시대의 활력을 상실하고 장기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헤겔은 그런 유교적 중국을 두고 변화와 발전이 없는 "지속의 왕국(das Reich der Dauer)"이라 폄하(貶下)했다. 천자 한 사람의 전제 지배 아래 중국의 역사는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헤겔의 평가절하는 문사들에 의해 지배된 중화제국(Imperial China) 시대 2000년에 대해서는 적합해 보이지만, 무사들에 의해 지배되어 활력이 넘치던 춘추전국시대에 대해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유학자들은 오랫동안 먼 옛날 요순이 다스리던 황금시대를 동경하는 한편, 여러 나라로 쪼개져 지지고 볶으며 싸우던 춘추전국시대를 사악한 혼란의 시대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과연 이 개탄이 옳은 걸까.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와 철기가 보급되고 상공업이 발달해 생산과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고, 제자백가가 등장하여 온갖 사상이 자유롭게 꽃을 피웠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사와 문명은 늘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가운데 발전하기 마련이다. 싸움이 없다면 아무 발전도 없다. 불행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이 역사 발전의 비극적 법칙이다. 헤겔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내가 남보다 우월함을 남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나와 남 사이의 목숨을 건 투쟁에서 찾았다. 인정투쟁에서 이긴 자는 주인이 되어 자유를 얻고, 진 자는 노예가 되어 자유를 잃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운 주인이 되고 싶어 하므로 헤겔이 역사의 목적을 자유의 확대에서 찾는 것은 당연하다.

헤겔이 희랍에서 진짜 역사가 시작된다고 말한 것은 희랍에서 인정투쟁이 벌어지면서 비로소 자유가 실현되기 시작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희랍에 대한 도덕적 예찬이 아니고 희랍의 비참이 그 영광의 원천이었다는 말이다. 헤겔의 비극적인 역사철학에 따른다면 전란으로 얼룩진 춘추전국시대야말로 인정투쟁이 활성화되고 자유가 실현되기 시작한 발전의 시대였다고 칭송할 수 있다.

◇문사의 도덕적 이상주의 vs. 역사의 비극적 현실

하지만 유교 경전에서 효제와 삼강오륜이라는 도덕적 선을 배우고 그 아름다운 이상을 역사의 현실 속에 실현하겠다고 나선 유학자의 눈으로 보면, 모든 국가가 무사 지배의 전투 조직이었고 그런 국가들이 치열하게 인정투쟁이 벌어지던 춘추전국시대는 도덕적 악 그 자체에 불과하다. 유학자는 불행이 행복을 빚어내고 악이 선을 빚어낸다고 보는 헤겔의 비극적 변증법에 동의하기가 불가능하다. 전투 조직으로서의 국가도, 국가들 간의 인정투쟁도, 역사와 문명의 발전도, 개인의 자유 실현도 모두 버려야 할 도덕적 악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역사의 현실은 늘 비극적이다. 역사는 인간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선과 정의가 패배하고 악과 불의가 승리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대립과 갈등과 전쟁이 없는 역사는 있은 적이 없다. 역사는 곧 비극이다. 그런 역사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비극을 받아들이고 비극과 동거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유학자가 보기에는 도덕적 악과의 타협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유교 경전을 읽고 거기서 아름다운 도덕적 이상을 배운 문사가 과거에 급제해서 관료가 되면 당연히 자신의 머릿속 이상을 기준으로 역사의 비극적 현실을 전면 부정하려 들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보기 마련이다. 순결한 도덕군자로 남으려면 애당초 관료가 되지 말고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임천(林川)에서 조수와 더불어 사는 은자(隱者)가 되는 편이 옳다. 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도덕적으로 순결하다. 은자는 조선조 모든 주자학자들의 꿈이었다.

유교 경전을 읽고 배운 문사만 관료가 될 수 있는 유교 국가에서는 역사와 문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중화제국 시대 2000년 동안 중국이 정체상태에 머문 것은 문사 지배의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중국보다 훨씬 더 유교적이었던 조선조 500년은 중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문사 지배의 시대였던 만큼 그 정체상태가 중국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남보다 더 잘난 체하려는 인정투쟁을 도덕적 악으로 보아 다 부정하고 나면 역사와 문명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무사 지배의 사회가 활기찬 이유

무사 지배의 시대가 더 활기찬 것은 비극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무사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사 혹은 유학자는 도덕적 이상을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한 다음 그 이상을 현실 속에 옮기려 들지만 무사는 도덕적 이상을 생각하거나 말할 겨를이 없이 몸과 마음을 다해 비극적 현실에 맞서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도덕적 이상을 생각하느라 비극적 현실로부터 눈길을 돌리는 순간 무사는 누군가의 칼에 목숨을 빼앗기게 된다. 무사는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현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책에서 배운 아름다운 도적적 이상에 오염되지 아니한 무사 지배의 사회는 인간의 욕망이 지지고 볶는 가운데 만들어 가는 역사의 비극적 현실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무사는 시장의 상인에 대해 문사 혹은 유학자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 그리고 역사의 비극적 현실 너머 종교적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도 무사는 문사 혹은 유학자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 그리하여 무사 지배의 사회는 문사 지배의 사회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더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훨씬 더 깊이가 있다.

문사 지배의 유교 국가에서는 역사의 비극적 현실을 구성하는 주역들인 무사와 상인과 종교인을 천시한다. 중국보다 조선이 훨씬 더 그랬다. 오로지 주자학 하나만 너무너무 열심히 숭상한 나머지, 조선은 나라를 지키는 무사를 천시함으로써 외침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자초했고,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는 상인을 천시함으로써 거의 모든 백성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게 했고, 종교인을 천시하여 승려는 도성 안에 들어갈 수조차 없게 만들고 새로 들어온 천주교를 가혹하게 탄압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정신적으로 천박해지고 백성은 위안받을 데조차 없게 되었다.

◇문사의 이상주의에 다시 흔들리는 대한민국

문사 지배의 조선에 대한 부정이 곧 대한민국이라 할 수 있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정반대다. 대한민국은 도덕적 이상에 찌든 문사가 아니라 역사의 비극적 현실에 충실한 군인과 상인과 관료가 목숨 걸고 지켜온 국가다. 대한민국의 상인과 관료는 역사의 비극적 현실에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무사적 현실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무사적 현실감각은 추호도 없이 오로지 도덕적 이상에만 찌들어 있는, 조광조와 같은 문사들이 대거 등장하여 대한민국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도덕이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래서 지식인이라기보다 먹물이라 부르는 게 더 적합한 저 순진한 문사들은, 효제와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의 도덕적 이상 대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라는 근대의 도덕적 이상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군인과 상인과 종교인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유교 도덕은 전근대적이긴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알지 못하는 공동체적 질서란 점에서 사회주의나 민족주의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군인과 상인과 종교인은 존립의 터전을 잃게 되는 대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역사의 비극적 현실을 전면 부정하고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사림파 주자학자들의 집권 이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전국이 초토화되었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도덕적 이상에 매몰되어 있는 문사들이 대한민국의 권력을 장악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들의 의사에 반하는 어떤 정권도 존립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권력은 강고하다. 조선이 멸망하고 백 년이 더 지나 느닷없이 사림파가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부활한 느낌이다. 무슨 참화가 일어날지 두려울 뿐이다.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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