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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의 특수성을 토대로 여성 은행장을 발탁한 것 이외에는 주요 시중은행 여성 CEO는 없다.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이 여성 은행장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유명순 씨티은행장과 강신숙 Sh수협은행장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시중은행 등 주요 은행의 사정은 매우 다르다. 시중은행 여성 직원 비율이 50% 안팎까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임원 비율은 10%가 안 된다. 남성 직원 대비 여성 직원 임금 수준은 80%를 밑돈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 CEO 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을 비롯한 주요 금융지주들은 이달부터 직원의 성별에 따른 세부 보수액을 공개하는 '성평등 임금(고용평등임금) 공시제'를 도입한다. 금융권이 성평등 임금을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시가 논란 대상인 주요 시중은행 남녀 임금 격차 해소의 계기가 될지 관심거리다. 환영할 일이다.
2020년 미국 대형은행 최초로 제인 프레이저(53)가 씨티그룹 CEO로 지명됐을 때 뉴욕 월가는 발칵 뒤집혔다. 군소 은행 여성 CEO는 간혹 있었지만, 미 3위 은행인 씨티그룹을 이끄는 인물이 여성 발탁 사실이 전해지자, 월가에서는 "세계 금융의 심장 월가 대형은행에서 유리 천장이 깨졌다"고 환호했다. 씨티은행장 겸 글로벌소비자금융 대표를 지내고 있던 그가 씨티그룹을 총괄하는 CEO로 지명된 것이다. 프레이저는 미국 10대 은행 중 최초의 여성 CEO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의 지명에 대해 월가는 '중요한 이정표'라며 환영했다. 골드만삭스 한 임원은 "프레이저, 선구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고 환영했다.
하지만 당시 한 언론은 "프레이저 지명은 기념비적이기는 하지만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언론은 미 대형은행 이사회에서 여성은 3분의 1도 채 되지 않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오른 기업 중 31곳만 여성 CEO가 이끌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미국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의 경우 여성 CEO를 기대하기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금융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KB국민 등 4대 금융지주는 물론이고 BNK 등 다른 지주에는 여성 CEO가 단 한 명도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매우 드물게 여성이 은행장으로 발탁된 경우가 있었지만, 금융그룹을 총괄하는 지주 회장은 남성 전유물로 굳건히 남아 있다.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총리 가운데 여성이 발탁된 경우를 종종 보고 있고 세계적 대도시나 거대 기관에 여성 시장이 있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지만, 우리의 금융계는 여전히 남성 중심 사회로 남아 있다.
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 등으로 남성보다 형편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성들이지만, 성평등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여건 변화를 고려할 때 이제는 금융계에서도 여성에 대한 유리 천장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과감하게 깨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조업과 달리 상대적으로 꼼꼼하고 섬세한 경영 관리가 필요한 금융권에서 여성 CEO는 의외로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프레이저는 "맥킨지 근무 시 아이를 낳은 지 2주 만에 승진 전화를 받았지만, 머릿속에는 '빨리 전화를 끊고 아기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의 언급대로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경력 쌓기는 남성보다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창 경력을 쌓아갈 때 육아를 피할 수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남성에 견주어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이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한다.
우리 사회, 적어도 금융권은 여전히 남성 우위다. 아쉽게도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이미 3명은 지난해 연임이 확정된 상태다. 이들은 곧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쳐 임기를 이어간다. 남은 KB금융지주의 경우 9월 최종 후보가 결정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성평등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그럼에도 은행권이 여성에 대한 시각을 넓히지 않는 것은 이런 추세에 역행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 늦지 않게 여성의 CEO 진출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