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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28년 만에 처음 선택한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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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

승인 : 2026. 04. 09. 10:48

'사냥개들2' 임백정 役, 첫 악역 도전
복싱 액션→감정 소모까지 새로운 경험
"후배들에게 배우며 변화 받아들이는 중"
정지훈
정지훈/레인컴퍼니
배우 정지훈은 데뷔 이후 줄곧 '호감형' 이미지를 쌓아왔다. '상두야 학교가자'를 통해 연기자로 얼굴을 알린 뒤 '풀하우스' '이 죽일놈의 사랑' '닌자 어쌔신' 등을 거치며 로맨스와 액션을 넘나들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관객의 편에 선 인물이 있었다. 잘 웃고, 잘 싸우고, 결국 이기는 남자. 그 이미지를 스스로 깨는 데 28년이 걸렸다.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악역은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 시즌2의 임백정이다. 글로벌 불법 복싱 리그를 배경으로 죄책감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기존 필모그래피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악역을 연기하며 너무 괴로웠다. 평생 할 욕을 다 해본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사냥개들'은 불법에 맞서는 두 청춘 복서 김건우와 홍우진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물이다. 2023년 공개된 시즌1 이후 3년 만에 시즌2가 공개되며 다시 관심을 모았다. 시즌1에서 불법 사채 조직과 맞섰던 두 인물은 이번 시즌에서 글로벌 불법 복싱 리그라는 더 거대한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이어간다.

정지훈은 시즌2에서 불법 복싱 리그를 운영하는 임백정 역을 맡아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임백정은 돈에 대한 집착을 바탕으로 죄책감 없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인물로, 극단적인 폭력성과 냉혹함을 드러낸다. 특히 김건우, 홍우진과 맞붙으며 피와 살점이 튀는 잔혹한 대결의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그가 오랫동안 악역 제안을 고사해 온 이유는 명분 때문이었다. 이미지 변화를 감수할 만큼의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선택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달랐다. 그는 "시즌1을 인상 깊게 봤고 시즌2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복싱 기반 액션은 처음이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정지훈
'사냥개들2' 정지훈/넷플릭스
임백정이라는 인물은 그에게 끝까지 몰아붙이는 과제였다. 매 장면마다 상대를 어떻게 더 절망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그 과정은 육체적으로도 극한에 가까웠다. 그는 "진통제를 먹어가며 촬영했다. 촬영이 끝나면 대본을 보고 다시 운동을 반복했다"고 했다.

감정적인 소모는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스로를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그는 캐릭터와의 충돌을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평소 같으면 화낼 일이 아닌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더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더 무서워하는 것 같더라"고 웃었다.

연출을 맡은 김주환 감독은 캐릭터를 규정하기보다 여백을 남겼다. 정지훈은 "대사를 줄이고 감정으로 채우라는 주문이 많았다"며 "'지금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을 계속 받다 보니 결국 대본과 상황에만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임백정은 기승전결보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완성됐다.

그는 가수와 배우를 오가며 2008년 '스피드 레이서', 2009년 '닌자 어쌔신'을 통해 할리우드 진출을 경험했다. 지금은 K-콘텐츠가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나는 시대가 됐지만, 당시에는 직접 발로 뛰며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변화의 흐름 속에서 배우는 입장을 자처한다.

"지금은 후배들 덕분에 시대 흐름을 배우고 있는 느낌이에요. 예전 기준으로는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들도, 지금은 그렇게 단정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어요. 시대를 이해하는 속도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고 콘텐츠 흐름도 마찬가지죠. 기회가 된다면 20~30초짜리 액션 드라마 같은 짧은 형식도 해보고 싶어서 후배들에게서 많이 배우려고 해요. 이제는 연예인이라는 개념 자체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저 역시 그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배우고 있는 과정입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몸을 만드는 연기는 이제 내려놓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오히려 몸을 망가뜨리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훈
정지훈/레인컴퍼니
이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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