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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사(餓死)

[칼럼]아사(餓死)

기사승인 2019. 09. 2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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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펄 벅(Pearl S. Buck)은 소설 ‘대지’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다. 1938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세계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한국과 인연이 많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듯싶다.

미국태생인 벅은 생후 3개월 선교사인 부모의 품에 안겨 중국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낸다. 어머니의 강권으로 대학은 미국으로 진학했지만 졸업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삶은 한마디로 ‘경계인’이랄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사이에서 그리고 소설가로서 정체성과 정신지체를 앓는 딸아이의 양육을 도맡은 엄마의 역할 사이에서 고뇌했다. 또한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이던 비자발적이던 전쟁과 혁명으로 부침이 많았던 경계에 선 동아시아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런 이유에서인가 그녀는 인생의 말년 인권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한다. 작가로서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인권운동가로서 벅은 한국과 연이 더 깊다. 6.25동란이후그녀는 한국에서 전쟁 중 낳고 버려진 혼혈사생아들의 실체를 보고나서 재단을 설립하고 그들을 돌보는 사업을 했다. 부모 없이 거리를 헤매는 제도권 밖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거두고 돌보았다. 그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한국펄벅재단’은 현재에도 그녀와 인연이 있는 경기도 부천에 있다.

벅의 대표작 ‘대지’에서는 굶주림의 고통이 어떠한지 잘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그녀 역시 전란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피난을 떠나야했고 그 과정 중에 굶주림을 경험한 모양이다. 그녀의 글에는 수확을 앞둔 들녘에 새카맣게 몰려드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한 톨 낱알도 건지지 못하고 유랑을 떠나야하는 극중 인물들의 망연자실함이 어떠할지 간접적으로나마 가늠케 하는 힘이 있다.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이 먹을 때라고 한다. 그만큼 먹는다는 것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일 게다. 그래서일까 굶주림은 인간에게 크나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가장 큰 고통 역시 아사(餓死)라고 한다. 굶어죽는다는 것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세계의 고통이며 비극이다.

굶주림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소설가 조정래를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전라도에 혁명의 기운이 잠재된 이유를, 그는 대표작 ‘태백산맥’에서 굶주림과 연계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에 유일한 지평선을 가지고 있는 전라도 일대의 곡창지대는 전통적으로 지배계층의 수탈의 대상이었다. 집 앞을 나서면 넓은 평야가 널려있고 가을이면 어김없이 황금들녘이 되지만, 조선의 부패한 탐관오리에서부터 일본 군국주의하수인들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이 먹을 곡식마저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갔기에 그 한의 정서가 극에 달해있었다는 것이다.

두 작품이 그리고 있는 굶주림의 공통점은 추수를 앞에 두고 재난에 빠지거나 수탈을 당해 굶주리게 된 상황을 묘사한다. 말하자면 풍요로움 앞의 결핍이다. 수확을 앞에 두었다가 잃어버리거나 수확하자마자 수탈당할 때, 먹을 것을 지천에 두고 굶주리는 상황에 맞이하게 될 때 배가되는 절망의 극한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졌기에 그 고통이 절절하게 문장에 녹아 있다.

지난 21일, 아사(餓死)로 판명된 탈북민 모자의 장례식이 있었다. 벽안의 소설가가 전쟁이후에 한국으로 건너와 경계에 선 굶주린 아이들을 돌본 이유는 그녀 역시 경계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벅은 우리나라에 대해 ‘고귀한 사람들이 사는 빛나는 곳’이라고 했다. 절대 빈곤 속에서도 민중들이 서로를 보듬고 사는 ‘재난유토피아’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일 게다. 정파를 가리지 말고 소수자로서 체제의 경계에 서서 혼란을 겪고 어렵게 생활을 꾸리는 탈북민들이 더 있는지 관계당국은 물론 시민사회가 나서 돌보아야할 때다. 그들이 굶고 있다면 식량이 부족한 북한에서보다 물질이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더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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