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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보수파 이론가 덩리췬 100세 나이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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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기자

승인 : 2015. 02. 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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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덩샤오핑과 맞서기도 해
중국 보수파의 대부이자 이론가로 알려진 덩리췬(鄧力群)이 10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0세로 천수를 누렸다.

덩리췬
향년 100세로 별세한 중국 보수파의 태두 덩리췬./제공=신화통신.
관영 신화(新華)통신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전날 오후 입원해 있던 베이징에서 숨을 거뒀다. 통신은 그에 대해 “우수 당원이자 오랜 경력의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무산계급 혁명가, 우리 당 사상이론 선전 전선의 걸출한 영도자, 마르크스 이론가”였다면서 높이 평가했다.

후난(湖南)성 구이둥(桂東)현에서 태어난 그는 당 이론잡지로 유명한 훙치(紅旗)를 통해 처음 이름을 널리 알렸다. 지난 세기 70년대에 부국장에 해당하는 부총편집으로 있으면서 필봉을 휘날린 것. 당연히 덩샤오핑(鄧小平)을 수장으로 하는 개혁파의 주자(走資) 노선을 반대하는 쪽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로 인해 당에 의해 전격 발탁돼 사회과학원 부원장을 거쳐 당중앙 판공청 부주임과 중앙서기처 연구실 주임, 중앙선전부장, 중앙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등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덩샤오핑이 개혁, 개방 노선을 추진하기 시작한 지난 세기 80년대부터는 보수파 수장인 천윈(陳雲)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돕기도 했다. 천이 덩샤오핑에 반대해 오랫동안 보혁(保革) 사상투쟁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다 그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덩샤오핑에게 밉보여 한때 권력에서 밀려났으나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보수파의 수장이라는 의미의 ‘좌왕(左王)’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것은 다 이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홍순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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