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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밀월로 러시아 피 받은 류사오치 손자 화제 인물로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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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기자

승인 : 2015. 05. 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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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직업 군인으로 생활하다 광둥성 광저우에 정착
미국과 일본의 동맹 강화로 촉발된 중국과 러시아의 신 밀월 관계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마치 혈맹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중국인의 러시아에 대한 인상 역시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다.

알류샤
1960년 류사오치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의 알료샤. 어머니, 누나와 함께 할아버지와 포즈를 취했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이 와중에 최근 전혀 예상 못한 인물이 언론에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면서 크게 주목을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국가주석을 지낸 중국의 혁명 원로 류사오치(劉少奇)의 장손. 그런데 완전한 중국인이 아니다. 러시아 혼혈이다. 이름도 중국 이름 류웨이닝(劉維寧)보다 알료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중러 우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인공이 아닌가 보인다. 뜨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단언해도 좋을 듯하다.

중국 관영 언론의 최근 보도를 종합하면 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대학 유학생이던 류사오치의 장남 류윈빈(劉允斌). 어머니는 러시아 여성인 마라 페라토라로 1955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도 채 익히기 전에 생이별을 해야 했다. 나이 두 살 때인 1957년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귀국한 것. 이후 그는 아버지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의 발발 이듬 해에 아버지가 자살한 탓이었다. 게다가 2년 후에는 할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났다.

알류샤 1
광저우에서 생활하는 알료샤 가족./제공=검색엔진 바이두.
그는 이렇게 해서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 됐다. 그 역시 류웨이닝이 아닌 러시아인 알료샤로 살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를 위해 군대에서 20년 동안이나 직업군인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3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 그대로 눌러앉는 선택을 했다. 이어 가족들 역시 모두 불러들였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나라에서 중국인으로 한 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알류샤2
올해 5월 5일 광저우에서 열린 한 중러 친선행사에서 나란히 무대에 올라 군가를 부르는 알료샤./제공=검색엔진 바이두.
올해 초만 해도 그는 일부 호사가나 언론에만 알려졌었다. 그러나 중러의 밀월은 그의 존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게다가 출신성분이 범상치 않았던 탓에 언론에서도 경쟁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이제는 웬만한 중국인은 다 아는 사람이 됐다. 더불어 사업도 잘 되고 있다고 한다. 중러의 밀월이 아니었을 경우 그저 그렇게 잊혀졌을 법한 그가 이처럼 뜨는 것을 보면 사람의 운명은 확실히 모르는 법이 아닐까 싶다.
홍순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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