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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 길 걸으면…계절은 벌써 가을 한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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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자

승인 : 2017. 09. 1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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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정서 흐르는 걷기 좋은 길 4선

한때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었던 남한산성은 이제 도시인의 휴식처이자 걷기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사람들 성곽을 따라 걷고 있다/ 사진=김성환 기자


가을 들머리. 가느다란 바람, 잎새의 작은 떨림에도 그리움이 솟구치고,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계절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두려워 할 일은 아니다. 그리움에 한바탕 몸서리치고 나야 비로소 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니, 느닷없이 솟구치는 애틋함은 반갑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제 가을 올까, 기다리다 조급해질 때 이 길들을 찾아간다.    그리움의 정서가 오롯이 깔렸으니, 걷다보면 계절은 이미 가을 한복판임을 알게 된다.  


△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성곽길 


남한산성에는 치열한 역사가 부려져 있다. 1636년 12월 15일 병자호란 일어난다. 10만 청나라 군대의 느닷없는 진군에 조선의 임금 인조는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이곳에 피신한다. 1637년 1월 30일 임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산성 서문을 나선다. 삼전도(지금의 삼전동)로 가서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니 추운 겨울처럼 매섭던 전쟁이 마침내 끝난다. 47일간의 처절한 저항, 적장 앞에서 소리도 못 내고 울던 임금의 한(恨)과 민초들의 곡소리는 가을에 더욱 선명하게 심장에 각인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남한산성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막아낸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그날의 치열함은 잊히고 지금은 나들이 삼아 걷는 이들 참 많다. 코스는 다양하다. 이 가운데 산성로터리에서 전승문(북문), 우익문(서문), 수어장대, 지화문(남문), 영춘정을 지나 산성로터리(3.8km, 1시간 20분)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걷기 적당하다. 산성로터리를 출발해 영월정, 숭렬전, 수어장대, 우익문(서문), 국청사를 지나 다시 산성로터리(왕복 2.9km, 1시간)로 돌아오는 코스도 괜찮다. 흙길 걷고 돌계단도 오르고 소나무 숲 그늘에 앉아 숨도 고른다. 산허리를 에두른 성벽은 아름답고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장쾌하다. 지휘관이 올라 군대를 지휘하던 수어장대는 챙겨 본다. 2층 가람이 옹골차고 화려하다. 또 우익문은 산성의 4대문 가운데 조형미가 가장 빼어나니 기억한다. 우익문 옆 언덕은 남한산성 최고의 전망 포인트. 청계산, 관악산, 대모산, 남산, 북악산, 북한산, 아차산, 도봉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이 압권이다. 야경은 더 멋지고 로맨틱하다. 남한산성행궁도 꼭 들른다. 왕의 임시거처가 행궁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도 여기서 머물렀다.


시간이 박제된 듯한 대룡시장 골목길/ 사진=김성환 기자
△ 인천 교동도 대룡시장 골목길

강화도 서북쪽에 교동도가 있다. 섬이었는데, 강화도와 다리로 연결되며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됐다. 더 이상 섬이 아닌 이곳에 대룡시장이 있다. 낡고 오래된 풍경으로 몇 년 전부터 '빈티지 출사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500m도 채 안 되는 골목에는 60~70년대 시장 풍경이 고스란히 남았다.
오래된 풍경만큼 그리움이 곰삭은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직후 북한에서 넘어 온 피난민들이 시장 일대에 집결했다. 교동도에서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까지 직선거리는 불과 약 2km. 전쟁 끝나면 얼른 고향에 들어가려고 이들은 가장 가까운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 때 대룡시장은 교동도에서 가장 번성했다.  

그런데 한번 닫힌 북녘의 문은 60여년 지난 지금도 열리지 않았다. 고향 그리워하던 이들은 생계를 위해 자리를 뜨거나 생을 마감했다. 시간이 흐르며 이발관, 약국, 사진관, 그리고 상점마다 세월의 먼지가 내려앉았고 그날의 애틋함은 여전히 골목을 흘러 다닌다. 이것들 좇다보면 서두르면 10분 만에 끝날 여정이 먼 여행인 듯 느릿하게 지난다.
대룡시장에서 교동도의 진산으로 꼽히는 화개산으로 갈 수 있다. 화개산은 높지 않지만 섬에 솟은 산이라 풍광은 으뜸이다. 정상에 서면 기장섬, 주문도, 미법도, 아차도, 서검도, 불음도, 납섬, 함박도, 말도 등이 보이고 강화도 마니산과 북녘도 눈에 들어온다.


정읍사 오솔길 들머리를 걷는 사람들. 사위 고요한 오솔길은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백제가요 정읍사의 애틋하고 소박한 정서를 닮았다/ 사진=김성환 기자
△ 전북 정읍사 오솔길

행상 나간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은 망부석(望夫石)이 됐다. 백제가요 '정읍사'에 깃든 이야기다. 애틋한 노래를 테마로 조성된 길이 정읍사 오솔길이다.
오랜 전설 같은 이야기 음미하며 걸어본다. 여인의 사무친 그리움이 가을바람 타고 전해진다. 먹먹함에 도시생활의 퍽퍽함이 시나브로 사라진다. 
길은 세 코스로 나뉘는데 1코스는 초산동 아양산 들머리 정읍사문화공원에서 내장산 기슭 월영마을(6.4km)까지 이어진다. 2코스는 내장호수를 한 바퀴 돈다(4.5km). 마지막 3코스는 내장호수 옆 내장산문화광장에서 정읍천을 따라 다시 정읍사문화공원 들머리까지(6.2km) 연결된다.  

걷고 싶은 구간 선택해 걸어본다. 1코스가 정읍사의 정서를 닮아 걷는 사람들이 많다. 3시간쯤 걸린다. 소나무 숲 사이로 폭신한 흙길이 능선타고 이어진다. 또 판판하게 이어지다가 고개를 넘고, 은밀하게 숨겨놓은 숲도 보여준다. 들판과 마을이 발아래 펼쳐지고 두꺼비 닮은 바위도 나타난다.
내장호수를 한바퀴 도는 2코스는 완주하는데 2시간쯤 걸린다. 가을 살포시 내려앉은 수면이 볼수록 평온하다. 길 따라가면 내장산수목원이 나타나고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도 등장하다. 한국사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가 정읍이다. 이평면 하송리에 만석보가 있는데 만석보를 쌓을 때 고부(정읍의 옛 지명) 군수 조병갑이 부당한 세금을 물리는 등 학정을 일삼았다. 가뭄으로 흉년까지 들자 생계를 위해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내장산문화광장에서 정읍사문화공원 들머리까지가 정읍사오솔길 3코스다. 길은 정읍천을 따라가는 자전거도로다. 광장과 공원에 각각 자전거 대여소가 있는데 출발점에서 빌려 도착점에서 반납할 수 있다. 약 30분 달리면 정읍사문화공원이다.


가을 단풍 내려 앉은 부소산성/ 사진=김성환 기자
△ 충남 부여 부소산성길 

망국의 아픔에 마음 먹먹해지는 길이다. 부여는 123년 동안 백제의 왕도였다.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기며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부소산을 에둘러 성을 쌓았다. 부소산성이다. 망국의 순간, 백제의 왕과 궁녀들이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이 이 산성 안에 있다. 가을 되면 그날의 먹먹함이 더 짙어진다.
부소산성 둘레는 약 2.2km. 해발 106m의 낮은 산을 따라 산책로가 이리저리 이어진다. 소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숲을 이룬다.  

산성 안에는 문화재와 역사의 흔적들이 오롯하다.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가 깃든 낙화암은 백마강(금강의 부여 구간)을 굽어보는 장쾌한 전망이 압권이다. 낙화암 아래 고란사는 삼천궁녀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사찰로 식수로 애용되는 '고란수'로 유명하다. 부여읍내와 백마강 주변 너른 들판을 조망할 수 있는 반월루, 곡물을 저장했던 군창지터, 벡제의 왕과 귀족들이 계룡산 연천봉에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하루를 계획했다는 영일루 등이 있다.
태자골숲길은 꼭 걸어본다. 산성광장에서 군창지 인근 휴게소까지 이어지는 약 1km 남짓한 숲길이다 옛날 백제 왕자들이 산책하던 길이라 '태자골숲길'이라 이름 붙었다. 현지인들이 산책 삼아 걷는 길이라 사위가 참 고요하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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