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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시민들이 많이 찾는 제3호 근린공원인 노을공원 정상에 청라국제도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데크를 설치하고 이곳에 ‘청라도 표지석’과 청라도의 역사가 담긴 패널 등을 설치하는 공사를 최근 완료했다고 19일 밝혔다.
표지석은 받침석 위에 가로 750㎝ 세로 500㎝ 가량 크기의 오석(烏石)에 한자와 한글로 ‘청라도(靑羅島)’를 새겨 청라가 섬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전망데크 한편에 설치된 ‘역사 속 청라도의 옛 모습’이라는 제목의 패널 안에는 과거 문헌 속에 전해져 오는 청라도의 이름과 관련한 역사를 영어와 함께 표기했고 청라도 주변 해안선 변화 등을 이미지로 알렸다.
또 1910년 해안선 및 주변 매립과 관련한 이미지, 지난 1948년 9월 설립돼 2004년 2월 폐교된 청라분교의 역사, 1950·1960·1970년 대 등의 청라도 옛 사진을 패널 속에 넣었다.
이와 함께 인천 서구의 간척 사업과 청라도의 매립 현장 그림, 청라도 현재 모습도 볼 수 있다. 특히 ‘내가 살던 고향’ 코너에는 청라도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이름과 함께 집 모습 등을 촬영한 그림도 있어 청라도를 기억하는 주민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천경제청에 따르면 청라를 한자로 표기하면 ‘靑羅’인데 靑(청)은 ‘푸르다’, 라(羅)는 ‘벌이다, 그물’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섬 모양이 뻗어난 넝쿨처럼 생겨서 또는 푸른 넝쿨과 관목들이 많은 것에서 유래했다. 서곶에서 보이는 청라도가 유난히 푸른색이었기 때문에 파란 섬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 ‘파라’에 섬을 의미하던 ‘염’을 붙여 ‘파렴’이라고도 불렸다.
청라도가 섬이었을 당시 면적은 0.79㎢, 해발은 67.7m였으며 행정구역 상 인천 서구 경서동 산251, 산252에 속했다.
청라도는 서곶 앞바다의 섬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으며 주변에는 장금도, 소문첨도, 문첨도, 이도, 일도 등 작은 섬들이 있었다.
청라국제도시는 청라도 뿐만 아니라 많은 섬과 광대한 갯벌이 포함된 매립 지역으로 ‘청라’라는 이름은 ‘청라도’에서 유래됐다.
당초 지난 2003년 8월 11일 청라지구로 명명되었다 2011년 9월 22일 청라국제도시로 변경됐고, 푸른 보석과 같이 빛나는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靑羅(청라)’로 표기하고 있다.
윤문상 인천경제청 영종청라개발과장은 “과거 섬이었던 청라도의 역사를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번에 표지석과 청라도 역사 패널 등을 설치하게 됐다”며 “청라도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잠시나마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청라의 역사를 아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