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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못본 아시아]‘미국 엄마, 영국 아빠’ 미얀마 카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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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0. 12. 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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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소수민족은 비단 미얀마의 로힝야족 뿐만이 아닙니다. 미얀마의 카렌족 역시 태국 접경지대를 비롯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부는 우리나라에도 난민으로 입국해 있습니다. 이들 역시 식민지배와 전쟁,군부독재라는 미얀마 근현대사의 그늘 속에서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소외됐습니다. “카렌족은 미국 선교사를 어머니로 부르고, 영국 정부를 아버지라 부른다”는 말을 뒤집어 본다면 미국과 영국의 기독교세력이 아니었다면 카렌족이 빛을 보지 못했을 수 있단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서구 열강에 의해 분열이 더해지고 더욱 모진 역경에 처하게 됐을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투데이가 <우리가 못 본 아시아> 기획을 통해 카렌족을 조명합니다>

아시아투데이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 “로힝야와 마찬가지로 카렌족도 수 십 년간 버마(미얀마)군이 자행한 체계적인 인권침해로 고통을 받았다. 모든 소수민족들에 대한 버마군의 반(反) 인도주의 범죄가 정의의 심판을 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카렌족 디아스포라 그룹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흩뿌리거나 퍼뜨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diaspora)는 종교적·경제적·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향에서 타지로 이주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카렌족은 정확한 인구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미얀마에는 약 600만 명, 태국에는 10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는 약 21만 명, 호주와 캐나다에도 각각 약 1만 명, 5000명의 카렌족이 살고 있다. 한국에도 수 백명의 카렌족이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난민’으로 넘어간 이들이다.

내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닷새 전인 지난 16일에도 미얀마군은 카렌민족해방군(KNLA)과의 충돌로 미얀마 동남부 파푼에서 일부 병사들이 다쳤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미얀마 정부와 KNLA 등 8개 반군세력이 전국휴전협정(NCA)을 체결했지만 내전은 사실상 계속되고 있다.

카렌족은 미얀마 정부와 내전을 벌이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종족 중 하나다. 미얀마 전체 인구의 7%를 차지하며 버마족, 샨족에 이어 세 번째로 수가 많은 카렌족은 카렌민족동맹(KNU)과 산하 무장조직인 KNLA를 중심으로 미얀마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이 갈등의 근간에는 영국의 식민지배가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비극이 잉태된 순간이었다. 카렌족은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영국 편으로 포섭됐다. 서구문명과 함께 들어온 기독교는 여러 곳에 흩어져 살던 카렌족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줬고, 선교사 조너선 웨이드에 의해 탄생한 카렌 문자는 이들을 키워냈다. 식민정부 행정에 참여하거나 카렌족 분리·독립 운동의 선두에 선 것도 서구식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기독교 카렌인들이었다. 그러나 끝내 영국은 카렌족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카렌족 내부에선 불교도와 기독교들 사이의 분란이 커져만 갔다.

카렌족도 그들 내부의 언어·종교·지역적 차이를 뛰어 넘는 범카렌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했고, ‘카렌민족연합(KNA)’이 창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섰던 버마독립군은 영국 식민정부에 협력했던 카렌족을 학살했다. 이로 인해 양측은 모두 카렌족과 버마족이 같은 국민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1947년 기존의 KNA에 청년, 종교 단체를 포함시켜 새롭게 출범한 카렌민족동맹(KNU)은 1949년부터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분리독립전쟁을 벌였다. 76년부터는 분리독립을 포기하고 카렌주(州)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연방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카렌족은 버마족이 주축인 미얀마 정부의 박해를 받았다. 60여 년의 내전기간 강제 이주와 토지 수탈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때로는 노예에 가까운 강제노동도 수반됐다. 개발업자와 결탁한 반군의 이익에 카렌족 주민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이런 박해를 피해 수십만 명의 카렌족은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향하거나, 난민이 돼 망명길에 올랐다. 미얀마와 태국 간 국경지대에는 이렇게 피란길에 오른 카렌족 수십만 명이 살고 있다. 소수민족 탄압에 가장 앞장 섰던 군부정권이 물러나고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아웅 산 수 치가 집권하고 있으나 카렌족의 사정은 나아진 것이 없다.

2015년 체결된 전국휴전협정은 처음부터 결함이 있었고 5년 동안 좌절감만 낳았으며 실질적인 분쟁이 계속되고 있단 비판도 일고 있다. KNLA는 이달 초 공식성명을 통해 “정부군이 휴전 지역에서 병사를 줄이기는 커녕 군대를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민간 지역의 군사기지가 철수해야 싸울 이유도 없어지고 카렌족의 신뢰도 높아져 휴전이 가능해질 것”이라 강조했다.

태국 접경지대의 난민캠프로 밀려난 이들을 챙기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로 여겨지던 서구 국가들이다. 기독교계통 비정부기구(NGO)들이 80년대 중후반부터 카렌족 난민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서구 국가들도 ‘제3국 재정착 프로그램’ 등을 시행했다. 그러나 미국·호주·캐나다 등이 카렌족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고, 수십만 명의 카렌족은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카렌족 상황도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진 아웅 산 수 치 국가고문이 집권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다수민족인 버마족의 입장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군부독재는 끝났지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얀마군도 반군단체와의 휴전 요구를 거부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카렌족들은 미얀마 안에서도, 밖에서도 내몰리고 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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