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은 우리에게 영화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티베트를 소재로 한 이 이야기에는 전설 속의 이상향인 ‘샹그릴라’가 나옵니다. 이후 서양에서는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을 등지고 영혼의 구원을 찾을 수 있는 곳, 티베트로 떠나는 샹그릴라 신드롬이 일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멈추고 생로병사의 고통이 없는 낙원일 것만 같은 티베트, 그러나 강대국인 중국에 맞선 오늘날 티베트는 끝없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시아투데이가 <우리가 못 본 아시아> 기획을 통해 티베트를 조명합니다.>
|
티베트의 독립운동은 ‘달라이 라마’를 통해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달라이 라마는 ‘큰 바다처럼 깊은 지혜를 가진 스승’이란 뜻으로,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최고 수장을 일컫는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중생을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환생하는 스승’이라 여긴다. 티베트 독립운동을 이끌고 이것을 국제문제로 부각시킨 것은 현(現) 제14대 달라이 라마다. 그는 2살이던 1937년 환생 검증시험을 거쳐 1940년에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공식 즉위했다.
1949년, 중국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했고 티베트로 진군했다. 원나라부터 청나라 시대까지 중국의 영향력 밑에 있었던 티베트는 이 시기에 형식상으로는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몇 차례의 협상 끝에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지만 정치적·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협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뒤이은 토지개혁·종교탄압 정책 등으로 인한 반중감정이 고조되고, 달라이 라마의 안위마저 위협을 받자 티베트인들은 1959년 라싸에서 대규모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중국군은 이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티베트 지역을 칭하이(靑海) 등 일부 성으로 쪼개 편입시키고, 나머지 지역에는 오늘날의 시짱(西藏)자치구를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만 명의 티베트 피난민이 발생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같은 해에 인도로 망명해 히마찰프라데시주(州)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수립, 63년간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를 중심으로 한 티베트 디아스포라((diaspora)의 탄생이었다.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달라이 라마 14세는 티베트 독립운동에 있어 비폭력주의를 주창해오고 있다. 그는 비폭력 평화주의 활동에 대한 공로로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티베트 독립문제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망명정부 측은 티베트가 역사적으로 독립을 유지하고 자체 민족국가를 유지해왔다는 정당성을 내세우고, 중국 역시 역사를 근거로 티베트 통치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티베트와 중국 관계는 통상 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에는 당나라가, 티베트 땅에는 토번(吐蕃) 왕국이 자리를 잡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논쟁이 되는 것은 원나라 이후부터 청나라 시기까지와 20세기 중공 인민해방군의 티베트 주둔의 문제다.
원·명·청조에 걸쳐 중국의 지배에 놓이긴 했지만 중국의 군주들이 달라이 라마를 정신적 지도자나 황제의 고승으로 존중하고 통치권을 인정하는 등 ‘명백한 독립 국가’였다는 것이 티베트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중국은 원나라 이래 티베트는 중국에 주권이 예속된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주장은 그간 원나라(몽골족)와 청나라(만주족)를 이민족 국가로 여겼으나 당위성을 위해 갑자기 ‘조상’으로 끌어들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치적 문제였던 티베트와 중국의 문제는 학계에서도 역사논쟁으로 이어져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역사 속 티베트가 과연 제도적 측면에서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는지, 1940~50년대 중국군의 티베트 진군이 정말 ‘평화적 해방’이었는지 아니면 침략이었는지 하는 논쟁들이 그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같은 논쟁을 떠나, 독자적인 언어·문자·종교를 가지고 있고 독립된 역사공동체로 인식하고 있는 티베트를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탄압하고 존재를 지우려는 중국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반발과 비판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오늘날 시짱 자치주에는 이주해 온 한족들이 현지 상권을 장악했고, 티베트어와 전통문화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한족을 대거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8월 “티베트를 분리주의를 막을 동장철벽(철옹성)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학교에서 사상과 정치교육을 강화해 모든 청소년의 마음속 깊이 ‘중화민족을 사랑한다’는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시 주석은 “티베트불교의 중국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베트를 위시한 분리주의를 척결하겠다는 경고이자 티베트를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천명한 셈이다.
|
10여 년 전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후계에 대해 “살아 생전에 후계자를 정할 수도 있다”고 밝힌데 이어 2019년에는 미국 타임지 인터뷰에서 달라이라마 제도의 폐지를 시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입적하기 전에 환생할 장소를 예시하거나, 환생할 달라이 라마에 대해 예시한다. 달라이 라마의 사후에 고승들이 예시를 가지고 환생한 어린 아이(후계자)를 찾고, 교육과정을 거쳐 후대를 잇는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 지명은 “불교 지도자 환생과 관련해 정해진 중국의 법과 절차·역사와 예법에 맞게 선택될 것”이라며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신의 후대를 이을 달라이 라마가 중국 정부에 의해 결정될 것을 우려해 수 백년 ‘윤회·환생 신화’까지 포기하려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오늘날 티베트의 쓰라린 현실인 셈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미 지난 2011년 정교(政敎)분리를 선언했고, 망명정부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후계에 대해서 인도·네팔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 흩어진 티베트 지도자와 활동가들은 지난 2019년 “티베트인이 존재하는 한 달라이 라마는 계속 환생해야 한다. 후계자 결정은 전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권한으로, 관습을 따를 것”을 결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