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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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소리꾼 박인혜 혼자 등장하는데, 빈 무대는 곧 여러 인물로 가득 찬다. 절제된 가운데 일인다역을 오가는 연기가 상상력을 자극하며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기 드 모파상의 원작인 '보석' '콧수염' '비곗덩어리'의 사실주의적 혹은 자연주의적 특징은 의성어나 의태어를 통해 박진감 있게 그려지며 묘미를 느끼게 한다. 찹찹거리며 돈 세는 소리는 휘몰이로, 마차가 덩그렁 굴러가는 소리는 중중모리와 굿거리로 표현되는 등. 인간의 속물 근성과 전쟁의 참상 등 어두운 주제와 풍자적인 문체도 판소리의 구성지면서 해학적인 특징과 잘 맞아떨어진다. 아울러 남도소리뿐 아니라 경기소리·서도소리 등의 적절한 활용으로 리듬과 가사의 붙임새가 좋고, 즉흥성을 통해 장단의 시작과 끝이 말과 잘 어우러지는 유기성을 보인다.
극 전체를 시작하고 갈무리하는 것은 자진모리의 함축적인 곡이다. 머릿속을 맴도는 어젯밤 꿈같은, 잊었다 해도 생각나는 사랑 같은 '그저 짧은 이야기'라는 가사는 원작이 1880년대 프랑스에서 창작됐으나 여기의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나간 이야긴 훌훌 떨어 버리고, 다가올 이야긴 몸을 바짝 당겨 의심 없이 들어야" 한다는 가사는 일견 판소리 대목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삶의 현재에 집중하라는 듯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 에피소드의 서로 다른 맛을 잘 음미해 보라고 안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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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 김성근, 심미령, 오초롱, 정상화가 연주하는 음악은 각 에피소드에 맞는 다채로운 편곡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보석'에서는 소리북·장구·징 등의 타악, 피리·생황, 대아쟁·소아쟁으로 해학적인 상황과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콧수염'에서는 12현 가야금·25현 가야금·양금으로 서정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비곗덩어리'에는 특수 타악기인 박과 정주를 포함한 모든 악기가 총출동해 이야기의 규모에 맞는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악사들과 소리꾼 박인혜의 공연은 물 흐르는 듯 조화를 이룬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의 첫 작품인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으로 '두산아트랩' 예술가 지원을 받고 의정부음악극축제의 'Next Wave'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 이번 공연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쇼케이스를 거치며 개발된 만큼 완성도가 높다.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해 본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lizhyun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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