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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씨어터토크]그저 짧지만은 않은 이야기, ‘판소리 쑛스토리-모파상 편(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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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3. 02. 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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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다역 오가며 상상력 자극...어두운 주제를 해학적 판소리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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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쑛스토리-모파상 편(篇)'의 한 장면./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하지영
스프링 공책을 펼쳐놓은 것 같은 단출한 무대, 그 위로 누군가가 글을 쓰고 있는 듯 자막이 영사된다. 이는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의 첫 번째 단편소설 시리즈인 '판소리 쑛스토리-모파상 편(篇)'(박인혜 각색·연출·작창·음악감독)의 무대(박동우 무대디자인)이다. 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인 박인혜는 판소리뿐 아니라 창극·뮤지컬·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판소리의 확장성과 실험성을 보여줘 왔다. 재작년부터는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를 창단, 작창뿐 아니라 각색과 연출 등을 모두 맡아 외연을 넓히고 있다.

분명 소리꾼 박인혜 혼자 등장하는데, 빈 무대는 곧 여러 인물로 가득 찬다. 절제된 가운데 일인다역을 오가는 연기가 상상력을 자극하며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기 드 모파상의 원작인 '보석' '콧수염' '비곗덩어리'의 사실주의적 혹은 자연주의적 특징은 의성어나 의태어를 통해 박진감 있게 그려지며 묘미를 느끼게 한다. 찹찹거리며 돈 세는 소리는 휘몰이로, 마차가 덩그렁 굴러가는 소리는 중중모리와 굿거리로 표현되는 등. 인간의 속물 근성과 전쟁의 참상 등 어두운 주제와 풍자적인 문체도 판소리의 구성지면서 해학적인 특징과 잘 맞아떨어진다. 아울러 남도소리뿐 아니라 경기소리·서도소리 등의 적절한 활용으로 리듬과 가사의 붙임새가 좋고, 즉흥성을 통해 장단의 시작과 끝이 말과 잘 어우러지는 유기성을 보인다.

극 전체를 시작하고 갈무리하는 것은 자진모리의 함축적인 곡이다. 머릿속을 맴도는 어젯밤 꿈같은, 잊었다 해도 생각나는 사랑 같은 '그저 짧은 이야기'라는 가사는 원작이 1880년대 프랑스에서 창작됐으나 여기의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나간 이야긴 훌훌 떨어 버리고, 다가올 이야긴 몸을 바짝 당겨 의심 없이 들어야" 한다는 가사는 일견 판소리 대목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삶의 현재에 집중하라는 듯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 에피소드의 서로 다른 맛을 잘 음미해 보라고 안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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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쑛스토리-모파상 편(篇)'의 한 장면./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하지영
세 개의 에피소드는 뒤로 갈수록 개인의 이야기에서 사회 이야기로 확장된다. '보석'에는 죽은 아내의 보석을 팔아서 부자가 되는 소시민 남성이 나온다. 그는 모조인 줄 알았던 아내의 보석이 진짜임을 알게 된 후 큰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주머니가 채워지면서 자신을 지독히 절망시켰던 상실의 슬픔과 아내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져감을 느낀다. '콧수염'은 남성의 콧수염을 예찬하는 여인의 서간문으로 진행된다. 알고 보니 그녀의 콧수염 사랑은 전쟁의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다. 그녀가 기억하는 시체들의 '잘 다듬어진' 콧수염은 전쟁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삶을 지키려 했던 몸부림을 떠올리게 한다. '비곗덩어리'에서는 프로이센에 점령된 도시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그려지는데, 이들은 같은 마차에 탄 매춘부를 필요에 따라 희생시키고 경멸하는 야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에서와 달리 그녀가 극의 말미에 프랑스 국가를 부르며 꺾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악사 김성근, 심미령, 오초롱, 정상화가 연주하는 음악은 각 에피소드에 맞는 다채로운 편곡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보석'에서는 소리북·장구·징 등의 타악, 피리·생황, 대아쟁·소아쟁으로 해학적인 상황과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콧수염'에서는 12현 가야금·25현 가야금·양금으로 서정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비곗덩어리'에는 특수 타악기인 박과 정주를 포함한 모든 악기가 총출동해 이야기의 규모에 맞는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악사들과 소리꾼 박인혜의 공연은 물 흐르는 듯 조화를 이룬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의 첫 작품인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으로 '두산아트랩' 예술가 지원을 받고 의정부음악극축제의 'Next Wave'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 이번 공연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쇼케이스를 거치며 개발된 만큼 완성도가 높다.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해 본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lizhyun74@gmail.com)


현수정 공연평론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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