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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산토리홀 열기로 체감한 공연예술의 현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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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3. 02. 1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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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지휘 도쿄필 정기연주회와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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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 콘서트./출처=산토리홀
올해 1월말과 2월초에 걸쳐 도쿄를 방문했다. 코로나19 이후 만 3년만이었다. 오랜 만에 다시 방문한 도쿄에서 2편의 콘서트와 2편의 오페라를 감상했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저서 '메타버스 사이언스'(2022)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탈현실화라는 인류의 변화가 10년에서 20년 이상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메타버스라 일컬어지는 비대면, 비접촉, 가상 혹은 증강현실의 세계로 가는 길에 가속이 붙었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 역시 상당히 변한 느낌을 받았다. 대면과 실물을 중시하던 문화가 많이 줄어들고 QR코드로 확인 가능한 것들이 많아졌다. 오전에 다녀온 미술관 여러 곳에서도 예약 때 휴대전화로 발급받은 QR코드만 접촉하면 입장을 할 수 있었으니 3년 전 일본이라면 거의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지난 1월 말 정명훈 지휘의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를 보기 위해 산토리홀로 향했다. 도쿄 필하모닉은 1911년 나고야에서 창단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이자, NHK 교향악단과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다. 정명훈은 2001년 이 오케스트라의 특별예술고문으로 취임했고 2016년 명예상임지휘자가 됐다. 2001년 첫 지휘봉을 든 이래 도쿄 필하모닉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일본 클래식 음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휘자 정명훈에 대한 일본 음악계의 사랑은 대단하다. 이날 공연도 일찌감치 매진돼 티켓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특히 연주곡목이 슈베르트의 교향곡 7번 '미완성' D. 759과 브루크너 교향곡 7번으로 알려졌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정명훈과 도쿄 필하모닉은 흔히 8번 교향곡으로 알려진 '미완성' 교향곡을 1978년 도이치 목록에 따라 7번으로 번호를 매겨 공연했다. 예상대로 선율은 처연하게 아름다웠고 현과 관악의 조화는 거의 완벽에 가까워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익숙한 주제와 멜로디에 집중할 수 있었다. 2악장에서 우리에게 동요 '옹달샘'으로 잘 알려진 선율이 다양한 악기에 의해 연주되면서 다시 그것이 하나의 음색으로 합쳐지는 부분도 그지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며 흠잡을 곳 없이 끝을 맺었다.

비극적인 느낌이 절제되고 온화하게 표현된 '미완성' 교향곡도 좋았지만 정명훈 지휘자와 도쿄 필하모닉의 연주력이 폭발한 것은 2부에서 연주된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이었다. 다른 음악분야에 비해 일본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현악 파트가 정교하고 섬세한 연주를 들려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관악의 기량 또한 출중하다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번 공연을 통해 새롭게 확인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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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지휘의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출처=산토리홀
극도의 긴장감과 집중력으로 시작한 1악장에서부터 엄숙했던 2악장을 지나 확신에 차 모든 것을 분출한 4악장까지 어느 한 파트도 빠지지 않는 빼어난 연주력을 보여줬다. 특히 1악장의 호른, 2악장의 그 유명한 바그너 튜바, 3악장의 트럼펫, 4악장의 화려한 금관 총주 등 목관과 금관악기 파트에서 나타난 빈틈없는 실력과 강한 에너지는 동양의 오케스트라도 관악기를 이렇게 연주할 수 있다는 감탄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보기 드물게 열렬한 기립 박수 속에서 정명훈과 오케스트라도 연주의 결과가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정명훈 선생은 단원들 하나하나를 일으켜 세우며 오케스트라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사랑을 받는 것 같아 보이는 정명훈 지휘자를 보는 기분은 묘했지만 이날의 음악적 완성도를 생각하면 이들의 열광은 당연하게 생각됐다.

다음날 오후 산토리홀에서는 전날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연이 열렸다. 이탈리아 출신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의 오페라 아리아 콘서트였다. 그리골로는 매력적인 음색과 비주얼로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일류 성악가지만 2018년 영국 로얄오페라하우스와의 도쿄 순회공연 중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로얄오페라하우스와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무대에서 퇴출되는 등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번 도쿄 콘서트는 그런 논란 이후 첫 일본 방문인 셈인데, 그리골로는 그런 배경을 의식했는지 그의 대표 레퍼토리와 고난도로 알려진 테너의 유명 아리아를 대부분 노래하면서 적극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그리골로는 원숙한 기량과 빛나는 음색으로 오페라 '리골레토' '토스카' '사랑의 묘약' 등 높은 고음을 동반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유명 아리아를 거침없이 소화해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에트' '카르멘' '베르테르'와 같은 프랑스 오페라도 섬세한 감성과 유려한 선율을 살리며 우아하게 노래했다. 프랑스 오페라는 그리골로의 특기이기도 한데 그의 주요 프랑스 오페라 레퍼토리도 거의 연주됐다. 더 놀라운 것은 앙코르로 연주된 곡들이었다.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 중 카발레타를 노래했는데 이 아리아는 하이 C의 높은 고음을 강하고 지속적으로 내야해서 본 공연의 곡으로도 조심스러운 곡이다. 그러나 그리골로는 눈부신 음색과 성량으로 멋지게 연주했고 또 다른 앙코르곡으로는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 중 '의상을 입어라'를 선택해 가슴 절절한 절창을 들려주었다. 이탈리아 테너 특유의 친근한 태도와 적극적인 무대매너, 무엇보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주에 일본 관객들은 역시 뜨거운 박수로 호응했다. 심지어 플래카드까지 만들어온 팬들도 있어 아이돌 가수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낮 공연이기도 했지만 지난밤의 진지한 몰입과 감동으로 열광했던 도쿄 필하모닉 공연과는 대조적으로 유쾌하고 활발한 기운이 넘쳤다.

연달아 이틀 산토리홀의 열기 속에서 보내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예상치 못한 팬데믹으로 고통 받았고, 여러 분야에서 갑작스런 변화를 마주했다. 공연예술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궁여지책으로 한동안 비대면 공연을 지속했다. 효과 여부를 떠나 그것이 앞서 언급한 '탈현실화'의 세상으로 들어서는 한 가지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 인간이 직접 듣고 보고 접촉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소중함(배리어 프리를 위한 노력도 포함된다)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는 아직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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