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감정, 책임과 회피가 교차하는 무대… 연극이 던지는 근본적 질문
|
'카르타고'는 한 소년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감옥 안에서 태어나 보호관찰소에서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낸 토미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감시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되지만, 정작 그의 어머니 애니를 비롯한 그 누구도 그 죽음에 대해 쉽게 말하지 못한다. 교도관 마커스는 법적으로는 무죄를 선고받고, 사회복지사 수는 홀로 남겨진 애니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하지만 이미 구조 안에 배치된 인물들은 모두가 침묵의 위치에 있다. 이처럼 극은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정동, 위치, 그리고 제도의 작동 방식을 교차시키며 '진실'이라는 단어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파헤친다.
이 작품은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 톰슨의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12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청소년 범죄자 및 보호 아동들과 직접 마주했던 그는, 자신의 첫 희곡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카르타고'를 통해 '무대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세계를 진실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품은 단선적인 서사보다는 불확실성과 다층성, 그리고 구조와 감정 사이의 어긋남을 강조한다. 토미의 어머니 애니, 사회복지사 수, 교도관 마커스, 그리고 제도 안의 다른 인물들인 시몬, 카린, 알렉스 등은 그 어떤 전형으로도 단정되지 않은 채 각기 다른 층위의 제도적 위치를 점유한다. 이들은 이야기의 중심보다는 제도가 현실을 어떻게 관통하고 분류하는지를 보여주는 '표면'으로 존재하며, 관객은 그 표면을 따라가며 관계의 실패와 감정의 유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서사 구성은 연출을 맡은 신진호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카르타고'는 단일한 진실이나 명확한 윤리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지금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응시하고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현실과 감정, 절차와 개인 사이의 경계는 무대 위에서 흐려지고, 구조는 감정을 압도하며, 감정은 다시 구조 안에서 방향을 잃는다. 부조리극을 연상케 하는 장면 전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 정지된 듯 이어지는 대화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위 사건에 대한 명쾌한 이해를 유예하게 만들며, 오히려 '응시'와 '사유'의 자리를 열어둔다. 관객은 이 과정에서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작동하는 세계의 일부로 배치된다.
무대디자인, 조명, 사운드 등 시각적 요소는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를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권은지 무대감독을 비롯한 기술 스태프는 구조와 감정의 충돌을 암시하는 공간을 구성하려 시도한다. 길지산의 조명과 JUNG의 사운드·영상은 장면마다 낯섦과 단절의 감각을 조성하며, 무대 위 세계를 관객에게 낯설게 다가오게 만든다. 정제되지 않은 장면 구성은 제도 안의 현실을 직감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카르타고'는 2025년 5월 23일부터 6월 1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된다. 평일은 오후 7시 30분, 주말은 오후 4시에 공연되며, 월요일은 공연이 없다. 특히 5월 25일(일)에는 작가 크리스 톰슨과 연출 신진호, 출연진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돼 작품의 배경과 맥락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토미 역은 최호영, 애니 역은 조수연, 마커스 역은 유독현, 수 역은 김정아, 카린 역은 강현우, 시몬·알렉스·경찰1 역은 김준광이 맡아 각기 다른 층위의 인물을 세밀하게 구현한다.
이 작품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단순한 도덕적 질문 대신,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위치의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명확한 해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구조 속에 놓인 우리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을 감각적으로 직면하게 한다. 연극 '카르타고'는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으며, 관객에게 그 불편함을 '견디는 책임'까지도 요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연극이 지금 이 사회와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