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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경제 영토 확장, 이제는 디지털 자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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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27. 16:23

이정훈 (애자일플러스 대표·한국디지털자산평가인증 전문위원)
한때 '경제 영토의 확장'이라면 대규모 제조 수출과 해외 생산기지 건설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디지털 환경에서 서비스 중심의 경제 영토 확장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 인터넷과 플랫폼 기술의 발달로 기업들은 물리적 국경 없이 전 세계 시장을 누비며 사용자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의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은 전 세계 월간 이용자만 1억 3000만 명이 넘고,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약 30억 명에 달하는 인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있다.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알리바바 그룹의 알리익스프레스는 4억 명이 넘는 글로벌 이용자를 보유하며, 후발주자인 테무는 출시 1년여 만에 전 세계 1억 6천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쇼핑 앱으로 급성장했다. 이처럼 온라인 플랫폼들은 디지털 경제 영토를 빠르게 넓히며 국가 경제 영향력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제 영토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싱가포르와 UAE 등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싱가포르는 2019년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디지털자산 법률인 지급결제법(PSA)을 마련해 2020년부터 시행했고, 이로써 다수의 디지털자산 기업에 명확한 기준 아래 사업 기회를 열어주었다. 규제와 산업 진흥을 균형 있게 고려한 싱가포르에는 현재 수십 개의 디지털자산 서비스 업체가 정식 인가를 받아 운영 중이다. UAE의 두바이 역시 적극적이다. 두바이는 아예 디지털자산 규제청(VARA)을 설립해 NFT 플랫폼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했다. 이런 친(親) 디지털자산 전략 덕분에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와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싱가포르와 두바이로 몰려들었고, 글로벌 자본과 인재도 자연스럽게 유입됐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는 규제 불확실성이 낮은 두바이를 사실상 주요 거점으로 삼을 정도다. 디지털자산 육성에 성공한 국가들은 이처럼 규제는 명확히 하되 지나치게 옥죄지 않고, 오히려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며 과감한 지원에 나선 공통점이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국내 정책 기조는 오래도록 '규제 일변도'에 머물렀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마다 블록체인 육성을 외쳤지만, 법 제정은 지지부진했다. 진흥 예산은 삭감됐으며, 규제의 불확실성만 지속돼 왔다. 특히 2021년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엄격한 요건을 부과하여 업계 구조조정을 촉발했다. 그 결과 한때 60여 개가 넘던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 중 요건을 충족해 신고를 마친 곳은 29곳에 불과했고, 실명계좌와 보안인증 요건을 모두 갖춘 5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나머지 중소 거래소들은 줄줄이 폐업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되어 투자자 피해와 산업 위축이 야기됐다. 또 ICO(디지털자산 공개) 전면 금지 등 지나치게 엄격한 정책 탓에 유망한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 상당수가 싱가포르 등 해외로 법인을 옮겼고, 국내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거래소 중심으로만 짜인 낡은 틀 역시 문제다.

블록체인 산업은 결제, 자산운용, 커스터디(수탁), 컨설팅 등 전통 금융의 기능까지 흡수하며 다각화되고 있지만 한국의 제도는 여전히 거래소 감독에만 치중해 있다. 그 사이 세계 시장과 국내 정책의 괴리는 커져만 갔다. 현재 국내 시장은 해외 투자자의 진입조차 어려운 폐쇄적 구조로 고립됐다. K-코인은 거래소 상장에서 밈코인보다 못한 역차별까지 받는다. 정작 글로벌 금융사들이 비트코인 ETF 등을 통해 거대한 자금을 끌어들이는 동안 한국은 이러한 흐름에 크게 뒤처진 상태다. 대한민국은 블록체인 분야에서 잠재력이 큰 국가로 인정받는다. 탄탄한 기술력과 살아있는 도전 정신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코딩 인재를 보유했다고 평가받는다. 국내 투자자들의 디지털자산 투자에 대해 과열됐다는 인식도 있었지만, 이를 달리 보면 그만큼 새로운 기술에 민감하고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국내 개발자들이 주축이 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해외에서 인정을 받거나, 글로벌 해커톤 대회에서 한국팀이 두각을 나타낸 사례도 적지 않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한국의 젊은 인재와 기업들은 언제든 세계 시장을 무대로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기회의 문을 열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핵심은 시각의 전환이다. 한국 디지털자산거래소가 K-코인에 대한 적극적인 개방책을 내놓아야 한다. 디지털자산 관련 산업이 미래의 기반 산업으로 인식하고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은 제2의 벤처붐을 이끌 K-서비스 산업이며, 나아가 글로벌 디지털자산 허브로 전 세계 디지털 금융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K-코인 활성화가 최우선이다.

특정 법안의 도입 여부를 둘러싼 공방에 앞서, 무게중심을 규제에서 진흥으로 돌리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규제 완화와 산업 육성은 그다음의 구체적 정책으로 채워나가면 된다. 과거 제조업과 반도체에 대한 선제적 육성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듯, 디지털자산 산업을 키우는 용기가 우리 경제 영토를 넓힐 것이다. 글로벌 경제 영토 확장은 이제 규제가 아닌 혁신과 개방의 정신으로 달성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새로운 디지털 개척자 정신을 갖춰 나갈 때,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디지털 경제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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